시간이 야속하다. 한살한살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에 브레이크가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나이를 먹고 나서 분명해지는 건 고령사회가 되는데 일조했다는 사실뿐이다. 마땅히 준비한 것도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괜히 나 혼자만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것 같아 불안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시니어헬퍼는 나이가 들었거나, 들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도움글이다. [편집자주]

<대한데일리=염희선 기자> #내 기억의 방에 누군가 찾아와 스위치를 누른다. 불이 꺼지고 어둠이 삶의 기억 대신 방을 차지한다. 방 건너편에서 슬픈 소리들이 들려오는데, 그다지 관심은 없다. 나는 누구일까. 

치매는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다. 많은 세월을 살면서 뇌가 늙고 약해지니 기억을 잃게 된다. 나를 정의했던 기억들이 사라진 양만큼 나를 포함한 가족, 지인이 심각한 고통을 겪는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었지만 치매는 여전히 난공불락의 질병이다. 

보건복지부 중앙치매센터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만 65세 노인인구 중 치매 환자는 75만명을 넘어섰다. 2024년에는 100만명, 2039년에는 2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로 소모되는 사회적 비용도 15조원(2017년 기준)에 육박한다. 세계적으로도 치매는 심각한 문제다. WHO 자료를 보면 60세 이상 인구 중 5~8%가 치매 질환을 앓고 있다. 치매 환자들을 돌보는 사회적 비용도 2015년 8180억달러(971조3000억원)에서 2030년 2조달러(2375조원)로 늘 전망이다. 치매는 더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우리의 가족, 친척, 친구에게 찾아올 수 있는 아주 흔한 질병인 것이다. 

치매에 걸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만약 치매와 마주쳤다면 국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치매는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빼앗긴다. 치매환자를 간병하느라 신체·정신의 고통을 받고, 가족 간 갈등이 야기되고, 사회적 손실로 이어지게 된다. 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치매와 관련된 사회적 문제에 부딪할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개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치매국가책임제'를 선포하고 치매환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치매국가책임제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는 각 시·군·구 보건소에 설치된 치매안심센터다. 치매안심센터는 치매어르신과 가족이 1대1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치매검진도 받고, 치매어르신을 위한 쉼터도 마련돼 있다. 카페도 있으니 치매환자가 검진을 받을 때 가족들이 기다리며 쉴 수도 있다. 치매안심센터는 지난 2월 기준 전국에 177개소가 설치돼 있으며, 올해 연말까지 79개소를 추가로 지을 계획이다. 

치매안심센터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2017년 운영 시작 이후 2019년 2월 말 기준 197만명이 치매안심센터를 찾았다. 전체 추정치매 환자(2019년 기준 75만8000명) 중 약 37만명이 치매안심센터 등록을 마치고 관리를 받고 있다. 망설이지 말고 바로 치매안심센터를 방문하자.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치매환자 지문사전등록도 하고 있다. 지난해 1만1994명의 치매어르신이 지문을 등록했고, 경찰청과 협조해 총 6만5583건의 실종예방인식표를 발급했다. 아직 주변의 치매환자가 지문 등록을 하지 않았거나 인식표를 받지 않았다면 치매안심센터를 찾자. 

치매파트너에게도 도움을 구해보자. 정부는 지역사회에서 고통받고 있는 치매 환자들을 위해 자원봉사자인 치매 파트너를 양성하고 있다. 치매파트너는 치매 관련 교육을 받고 치매환자와 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8월 기준 약 90만명의 사람이 전국에서 치매 관련 봉사활동과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치매파트너 홈페이지에서 이와 관련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실현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진행될 치매환자 관련 프로젝트들도 많다. 관심을 기울이다 서비스가 시행되면 활용하자. 현재 민간병원 중 치매전문병동이 있는 곳을 치매안심병원으로 지정해 관련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연구가 속속 진행되고 있다. 또 256개 기초자치단체에 치매안심마을을 조성하는 방안도 준비 중이다. 교통이 불편한 기초자치단체를 위해서는 분소형 치매안심센터도 운영할 계획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치매환자를 위한 많은 지원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치매환자들이 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우리 주변의 누군가는 고통받고 있다. 언젠가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질병 치매. '내'가 먼저 관심을 기울일 차례다. 

저작권자 © 대한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