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데일리=염희선 기자> "기업은행에 외부출신 CEO가 선임돼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쏟아지는 차기 기업은행장 하마평에 대한 금융권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김도진 기업은행장의 임기가 오는 27일 만료되면서 차기 행장 후보에 여러 인물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외부출신으로는 정은보 한미 방위협상 수석대표, 유광열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최희남 한국투자공사 사장, 전병조 전 KB증권 사장이 거론되고 있다. 기재부나 금융당국 경력이 있는 관료 출신 인사라고 할 수 있다. 내부출신에는 시석중 IBK자산운용 사장, 김영규 IBK투자증권 사장, 임상현 기업은행 전무가 후보로 꼽힌다. 금융권에서는 대체로 외부출신에 무게추를 두고 있는 가운데, 한국노총과 기업은행 노동조합은 외부출신 인사에 대한 강한 반대 입장을 밝히며 투쟁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정부가 50% 지분을 넘게 보유하고 있는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에 정부 인사가 내려오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외부·관료출신 CEO 선임이 기업은행의 경쟁력 강화나 정부와 파트너십 확립에 있어 장점으로 꼽혔던 과거와는 상황이 바뀌었다. 

기업은행은 민영화 추진 계획이 완전히 취소되고 국책은행으로 남아 있기는 하나, 민간은행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처럼 정책금융의 한 틀에서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민간 금융시장에서 경쟁하는 역량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민간은행과 소매금융 영역에서 다투며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예금, 대출, 디지털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해외진출을 위해 투자도 아끼지 않고 있다. 

민간 금융시장에서 기업은행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내부출신 은행장 선임 기조도 강화되고 있다. 조준희 전 행장은 창립 50년 만에 내부출신 행장으로 선임된 쾌거를 이뤘으며, 소매금융의 기틀을 닦은 성과도 거뒀다. 후임인 권선주 전 행장은 국내은행 최초의 여성은행장 타이틀을 단 내부출신이며, 현 김도진 행장은 중소기업금융, 해외진출에서 성과를 거둔 내부출신이다. 조준희 행장 전에는 19차례 관료출신이 선임됐지만, 이후 3차례 연속 내부출신 행장을 배출하며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내부출신 행장들의 성과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김도진 행장의 후임으로 외부출신이 선임돼야 할 이유가 있을까. 보통 외부출신 CEO 선임은 위기의 순간에 요구된다. 내부에서 손쓰기 힘들 정도로 커진 환부를 도려내고, 수술(변화와 혁신)을 통해 재도약하기 위해 이뤄지는 것이다. 공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와 커뮤니케이션 강화 차원에서도 시행된다. 내부에 문제가 생기거나, 잘못을 했을 때 정부와 유대가 강한 인사를 선임해 방패로 삼는 것이다. 문제에 대한 정부의 징계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내부 피해를 최소화는 용도로 외부출신이 쓰인다. 

그렇다면 기업은행에 도려내야할 문제가 있는지 보자. 내부출신 행장 3명은 재임기간 기업은행의 역할인 중소기업 지원, 수익성 확대, 자산건전성 유지 관점에서 별다른 문제 없이 성과를 이어갔다. 채용비리나 DLF 사태 같은 은행권의 굵직한 사고에 휘말리지 않았고, 후계문제를 두고 파벌을 형성하지 않았다. 노동조합과도 파국에 치달을 정도의 갈등을 야기한 적이 없다. 정부와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돌발상황을 연출한 적도 없다. 기업은행이 위기를 돌파하거나,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들은 기억은 없다.

관료들이 기업은행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외부인사라는 주장도 허상에 가깝다. 과거 최병권 책임연구원이 정리한 LG의 CEO리포트를 인용해보겠다. 이 리포트에 따르면 혁신과 재도약을 위해 외부출신 CEO를 선임하는 것은 기대만큼 효과가 없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 짐 콜린스가 15년간 11개 기업을 조사하는 기간 등장하는 42명의 CEO 중 단 2명 만이 외부출신 CEO였다. 예일대 경영학 교수 제프리 소넨펄드도 외부 CEO가 반드시 성공을 가져온다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노스웨스턴학의 샤일레쉬 미탈과 윌리엄화이트 교수가 2007년 포춘500 기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외부출신 CEO와 내부출신 CEO의 연 평균 주가 성장률은 각각 5.2%와 5.6%로 별 차이가 없었다.

은행권에서 외부출신 은행장은 점점 더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신한·KB 등 국내 굴지의 은행들은 과거 외풍에 시달리던 때와 달리 내부에서 CEO 후보군을 꾸리고 직접 육성하는 추세를 강화하고 있다. 내부출신 은행장이 선임되면 전략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장기 전략을 짤 수 있고, 경영권 인계 과정에서 리더십 공백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내부출신은 조직문화 확립과 직원들의 소속감, 승진 의식 고취 차원에서도 권장되고 있다. 굳이 외부출신 행장을 선임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민간은행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이를 기반으로 중소기업 지원 역할을 해나가는 기업은행 입장에서, 위와 같은 장점을 내버려 두고 은행업무 경험도 일천한 외부출신 은행장을 선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금융권이나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를 입이 닳도록 반대해왔던 정부와 여당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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