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데일리=염희선 기자> #말기 직장암으로 투병 중이던 이 씨(62세)는 침대에 누워 치료만 받으며 남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이 씨는 남은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기를 희망하면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다. 이 씨는 하루라도 더 나답게 살고 싶어서 한 결정이라며, 회생 가능성이 없다면 환자에게 정리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임종기 환자의 무의미한 치료를 줄이고 삶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방식, 웰다잉을 추구하는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11만명이 넘는 사람이 이 제도에 동참하면서, 삶의 마무리에 대한 자기 선택권을 존중하는 문화가 싹트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현재(지난 2월 3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은 11만5259명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환자 본인이 연명의료결정을 선택하는 서식이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가족, 의사의 의견을 종합하고, 합의에 따라 연명의료를 시행하거나 중단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전체 작성자 중 여성이 7만7974명(67.6%)이며, 남성(3만7285명, 32.2%)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연령별로는 60세 이상 연령층이 9만7539명으로 84.6%를 차지했다. 지역별 작성자는 경기(27.2%), 서울(26.1%)이 다수를 차지했다.
법 시행 후 1년 동안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해 연명의료 결정을 이행한 경우는 3만6224명이었다. 대상자 중에는 남성이 2만1757명(60.1%)이다. 여성 1만4467명보다 1.5배 이상 많다. 연령별로는 60세 이상 연령층이 2만8519명으로 상당수를 차지했다.
전체 이행 건 중 가족결정에 따른 경우는 67.7%로 본인의 의사를 확인한 경우(32.3%)보다 높았다. 아직까지 연명의료결정에서 가족 중심의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제도 시행 초기 임상현장 종사자들의 제도 이해나 숙지 부족과 가족 중심 의사결정 문화가 자리잡은 결과”라며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임종기 자기 결정이 존중받는 문화조성을 위해 노력해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환자의 상당수는 상급종합병원(60.9%)과 종합병원(35.6%)에서 연명의료 결정을 이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명의료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및 항암제 투여의 의학적 시술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만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연명의료중단 결정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기로 하는 결정이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는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담당의사와 전문의 1인으로부터 사망에 임박한 상태에 있다고 판단을 받은 환자다.
연명의료중단결정은 환자의 의사능력이 있을 때는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로 확인한다. 환자가 의사 능력이 없지만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을 때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의사 2인의 확인이 필요하다.
또한 가족 2인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과 2사 2인이 확인을 해야 한다. 환자가 의사능력이 없고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도 없을 때에는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와 의사(2인)의 확인이 필요하다. 미성년자는 친권자인 법정대리인이 결정하며 의사(2인)의 확인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는 연명의료결정제도 관리를 위해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을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으로 지정해 운영 중이다.
전국 총 290개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에서 국민 누구나 평소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를 미리 밝혀둘 수 있도록 지정했다. 등록기관에서는 필수교육을 이수하고 의향서 작성에 대한 상담을 수행하는 인력 총 1461명이 활동 중이다.
또 연명의료 결정과 이행업무를 수행하려는 의료기관은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토록 해 총 173개소에서 등록했다. 행정·재정적 이유로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직접 설치하기 어려운 의료기관은 업무를 위탁할 수 있도록 공용윤리위원회를 지정해 총 7개소가 운영 중이 있다.
보건복지부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에 따라 의료기관 종사자 대상의 기본교육(총 3529명 이수)과 의사·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중점대상으로 하는 심화교육(총 403명 이수)을 실시했다.
또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설치를 독려하고 혼자 본인의 의사가 적정히 반영될 수 있도록 연명의료 자가결정 존중비율을 2020년부터 의료질평가 신규 지표로 도입할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연명의료결정 정보 제공을 위해 홍보활동도 이어나가고 있다. 대국민 소통을 위한 연명의료정보포털을 운영해 제도 소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방법, 등록기관 안내 등의 정보를 제공 중이다.
찾아가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소도 운영해 등록기관에 방문하기 어려운 국민을 대상으로 방문상담을 제공하고 있으며, 대국민 교육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보건복지부 측은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으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자기결정이 존중되고 임종기 의료가 집착적 치료에서 돌봄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임종 문화 개선이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제도 정립에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