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자욱한 안개로 텅 빈 갠지스 강가에서 보트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대한데일리=오은희 시민기자> 새해는 특별하다. 단지 숫자만 바뀌는 셈인데도 우리는 매년 1월 1일에 굳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한다. 나 역시 새해는 항상 특별해야 했다. 화려하게 차려입고서 파티를 하든, 보신각에 가서 제야의 종 치는 것을 구경하든, 언제나 이벤트가 있는 새해를 갈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장소를 잘못 찾아온 것 같았다.

새해 아침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배가 아파 잠에서 깨어났다. 한국에서 가져온 설사약은 전혀 약효를 내지 못했고,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리고 나서야 장이 겨우 진정되는 것 같았다.

인도에 도착한 첫날부터 ‘왜 이런 곳으로 여행을 온 걸까’하는 후회를 했다. 딱딱한 침대에 걸터앉아 입버릇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새해 첫날이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옷을 대충 주워 입고, 바라나시(Varanasi)에 있는 강가 가트(Ghat)로 향했다. 보트라도 타고, 디아(Dia)라도 띄워야 이 빌어먹을 인도여행의 의미를 조금은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인도에선 날씨마저 날 도와주지 않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탓에 일출은커녕, 거리에 사람들도 없었다.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아, 비를 그대로 맞으며 가트를 걸었다. 싸구려 패딩은 비를 맞아 점점 무거워졌다. 마치 내 마음처럼.

인적이 드문 가트를 30여 분 걸었을까. 갑자기 어디서 모였는지 모를 인파가 모두 속옷 차림으로 바라나시 강 물속에서 몸을 씻고 있었다.

 목욕을 마친 인도인 한명이 수염을 깎고 있다. 

비누 칠을 한 채 수염을 밀고 있는 한 인도인과 눈이 마주쳤다. 여기서 다들 뭐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It’s Karma. Happy New Year”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카르마가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물었더니, 그는 내 질문을 이해 못하는 듯 “카르마”와 “뉴이얼“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참견하기 좋아하는 인도인들답게 옆에서 다른 인도인이 말을 덧댔다. 인도인들은 매년 1월 1일이면 가트로 나와 지난해 동안 더럽혀진 몸과 마음을 갠지스(Ganges) 강물에 씻어 흘려보내고 새로운 날을 맞이한다고 설명해줬다.

그곳에 앉아 한참 동안 그들을 바라봤다. 젊은 여인들과 어린이, 백발이 성성한 노인까지 모두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정성스레 몸을 씻어냈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의 카운트다운, 에펠탑 앞에서의 폭죽 쇼 등 얼마나 해외에서 맞이하는 새해를 꿈꿔왔던가. 그런데 남의 씻는 모습을 바라보며 맞이하는 새해라니. 내가 꿈꾸던 것과는 매우 달랐지만, 이 날 것 그대로의 풍경에서 오는 이국적인 느낌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수백 명의 인도인들이 강가에서 씻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까지 깨끗하게 씻기는 기분이 들었다.

 바라나시 강가에서 만난 인도의 어린아이들이 카메라 앞으로 모여 미소짓고 있다. 

때마침 주변을 지나는 짜이(Chai, 인도 차) 왈라(Walla, 꾼)에게 짜이를 한 잔 시켰다. 비에 맞아 꽁꽁 얼어붙은 상태에서 따뜻하고 달짝지근한 짜이를 홀짝 들이키니 온몸이 녹는 것 같았다.

물론 이 짜이를 마신 후 나는 또 화장실을 들락거릴게 분명하지만, 일단은 매우 기분이 좋았다.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활짝 웃으며 짜이 왈라에게 인사를 건넸다.

“Happy New Year!”

매년 1월 1일에 인도인들은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가로 모여 몸을 씻는다. 지난해의 액운을 씻고,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새해의 시작을 맞이하려는 의식이다. 

*바라나시(Varanasi) : 인도 북부 갠지스강 중류에 위치한 도시.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자, 힌두교에서 가장 신성한 도시로 여겨진다. 인도인들은 바라나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성스럽게 여긴다.
*디아(Dia) : 꽃잎으로 장식되고 가운데 양초가 있는 동그란 종이배. 인도인들은 디아에 소원을 담아 불을 붙여 강물에 띄워 보내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믿는다.
*카르마(Karma) : 업(業)으로 해석된다. 통상 전생에 했던 일들을 가리킨다.
*짜이(Chai) : 홍차와 향신료를 설탕, 우유와 함께 끓여낸 차로 인도의 국민차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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