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데일리=김승현 시민기자> “미리 말씀 드리지만 조사를 진행했을 때 직장 내 괴롭힘이 실제로 있었더라도 저희 쪽에서 강제로 사과를 하라고 할 수도, 어떤 배상을 하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을 아셔야 해요. 그래도 진행하실 거예요? 실제로 인정받기도 어렵고 저희는 정말 어떤 것도 강제할 수가 없어요.”

내 건을 맡게 된 감독관은 나와 인사를 나누고 앉자마자 저 이야기를 꺼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진정을 진행하는 걸 만류하는 듯한 어조에 순간 의지가 꺾일 뻔 했다. 하지만 내가 바꾸지 않으면 주변의 누군가가 이런 상황 속에서 또 괴로워할 것이며, 더 이상 시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아 조용히 그만두고 나가는 또 다른 나를 이기적인 90년생으로 손가락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행해주세요.”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감독관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감독관이 있는 공간은 마치 은행 창구와 같다. ‘고용노동부 특별사법경찰관’이라는 멋진 타이틀과 달리 파티션도 없는 공간에 주르륵 앉아있는 사람들 중 배정된 감독관을 찾아 인사하고 나면 조사가 시작된다. 나는 준비한 자료를 전달하며 내가 어떤 식으로 업무에서 배제되었는지, 어떤 욕을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함께 들었는지 여러 차례에 걸쳐 설명했다. 조사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3시간 정도 걸렸다.

“사업장에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는지 조사하라는 공문을 보낼 거예요. 그런데 사업장에서 이걸 무시해도 특별한 페널티는 없어요.”

“네?”

“사업장에서 이걸 무시하고 조사 보고서를 올리지 않아도 강제로 보고서를 올리라고 할 수가 없다고요.”

“그럼 뭘 하실 수 있어요?”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진정을 넣으셔도 저희가 강제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요.”

“그쪽에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직장 내 괴롭힘으로는 벌금형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건 따로 법원에서 진행하셔야 해요.”

정보를 알려주겠다더니 왜 이렇게 힘 빠지는 이야기만 하냐고 물을 수 있다. 나처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진정서를 넣는 사람들이 미리 알아두면 좋겠다. ‘김○○+욕설’과 같은 피해자를 명확히 지칭하는 욕설이 담긴 녹음본을 가져오는 게 아닌 경우에는 해당 상황에서 같이 그 욕을 들은 사람이 있다고 한들 인정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사업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인정을 하더라도 노동청은 어떠한 것도 사업장에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노동청에서는 내 예전 사업장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자체 조사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사업장에서는 자체 조사를 실시했고 노동청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감독관은 사측의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욕설은 일회성이었으며 나와 동료, 상사 셋이 마주 보고 서 있는 상황이었지만 ‘○새끼들’이라는 발언은 나와 동료를 향한 게 아닌 혼잣말이었다고 전달했다.

그리고 업무 배제는 순전히 나의 오해라는 사측의 입장을 전달해왔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감독관의 말투에 실소가 터졌지만, 이걸 받아들일 수 없다면 재진정을 넣거나 감독관 교체를 해달라고 요청하면 된다는 친절한 안내에 나는 더 이상 감독관에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감독관과 입씨름을 할 동안, 나처럼 회사를 들이받고 나온 사람은 사측으로부터 ‘내용증명’이라는 서류를 받아보게 될 수도 있다. 나는 변호사가 작성한 두껍고 비싼 종이로 받았고, 이게 아무 변호사나 찾아가 10만원 정도 주면 써주는 페이퍼인 걸 알기에 별생각 없이 받았다.

다만 이런 걸 처음 보는 사회 초년생에겐 큰 공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첨언하자면, 내용증명은 누구나 쓸 수 있다. 사측에서 보내온 내용증명에 터무니없는 내용이 담겨있거나,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경우 발생하는 모든 비용은 너에게 청구하겠다는 내용이 있다면 MS워드든 한글을 열어 작성해라. 그건 너희가 내라고.

내용증명에 필요한 필수 내용은 수신, 발신인의 이름과 주소이며 정해진 포맷은 없다. 총 3부를 인쇄해 우체국에 가서 내용증명으로 보내겠다고 말하면 된다. 3부가 동일한 내용인지 확인한 후 우체국에서는 한 부를 내용증명 우편으로 발송하고, 한 부는 우체국이 보관한다. 남은 한 부는 법적 분쟁까지 이어질 상황을 대비해 잘 보관해두면 된다.

꼰대들은 우리에게 불만이 있으면 바로 그만두지 말고 말을 하라고 하지만, 아직 사회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안 됐고 말해봐야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기분이라 포기하고 싶을 수 있다.

한 명일 땐 구시렁 정도로 받아들이겠지만 한 사회, 그리고 한 세대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또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합쳐진다면 언젠가는 정신 차리라는 고함소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개인주의에 찌든 90년생들을 손가락질하는 꼰대들에게 왜 우리가 각자의 앞가림에만 신경을 쓰게 되었는지, 당신들이 말하는 우리 세대의 문제가 당신과는 진심으로 무관하다고 느끼냐는 질문을 던지며 두 번째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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