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대한 두 가지 시선 

상처가 된 기억을 바라보는 두 가지 입장이 있다. 하나는 ‘아픈 기억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며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비관적인 접근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는 상처를 통해 성장한다. 아픔은 우리 삶을 더 다채롭고 빛나게 만든다’는 다소 낭만적인 접근이다. 이 두 가지는 좀처럼 양립할 수 없으나 이번에 소개할 소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는 이 두 가지 입장이 적절히 잘 어우러져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본 작품은 ‘회상하기’라는 도구를 사용해 우리에게 상처의 서늘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특이한 도구인 현대양자물리학방정식를 가져와 상처에 대한 도식, 이름하여 ‘상처 도식(圖式)’을 완성해낸다. 과거의 아픔을 서술해내는 그 음울한 분위기가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지 아래 분석을 통해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기억의 양가성

기억에는 논리가 없다. 당시의 사건과 내 감정, 주위의 배경이 반자동적으로 한 데 뭉쳐 머릿속에 박혀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시점을 회상하다보면 기억의 양가적인 성격을 몸소 느낄 수 있게 된다. 어린 시절, 특히나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다보면 ‘트라우마와 현기증’-‘아련함과 따뜻함’이 동시에 밀려드는 걸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켈리 누나와 남자친구인 채드 윈터스는 뒤뜰에 있는 테니스 장비 보관실 뒤에서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들이 돌려 피우던 마리화나의 타들어가던 빛을, 옅은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밝은 오렌지색 반딧불이처럼 반짝이던 그 빛을 기억한다. 아래층에서는 어머니가 부엌에서 올리앤더 부인과 담소를 나누며 웃고 있었고, 밴틀리 박사와 올리앤더 씨는 거실에서 축구 경기를 시청하고 있었다. -<코네티컷> 중에서-

본 단편선은 단편 <피부>를 제외한 각 작품이 현재의 ‘나’가 특정시점-주로 아버지나 친구 등 누군가를 잃은 시점-을 회상하며 더듬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 당시 화자의 감정과 사건, 주변 배경들을 샅샅이 서술해내려는 노력이 각별하기 때문에 본 소설집을 ‘기억에 관한 기억’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각 작품에는 음울한 사건들과 직접적인 접점 없이 ‘나’를 괴롭히는 이미지들이 난무한다. 친구의 사고사, 아빠의 정신병, 죽음, 부모님의 이혼, 엄마의 동성연인과 같은 자극적인 사건을 중심소재로 배치하고, 싸우다 머리가 깨진 아미시 부족 남자애를 구경하던 일, 형이 겁탈했을지도 모르는 여자애의 모습, 아빠 이외의 이성과 함께하는 엄마의 모습 등 화자의 주변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이미지들을 집요하게 그리면서 어린 시절 흔히 느끼는 불안과 사소한 스트레스들을 잘 병치시켜 낸다. 아픈 과거의 현기증 나는 일면을 독자한테 이런 식으로 환기시켜 주는 것이다.

한편으론 과거 당시 자주 다니던 장소에 대한 자세한 묘사, 그 당시의 습관, 그 무렵의 동네 분위기를 담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가 소설 내내 배치된다. 그러나 당시의 ‘장소, 습관, 분위기’는 모두 주인공들의 상처를 상기시킬 수밖에 없는 것들, 혹은 상처가 휩쓸고 간 일상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때문에 이 아름다운 묘사들이 마냥 아름답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아래 인용문은 <폭풍>의 마지막 장면이다. 아버지를 잃기 전 두 남매가 퇴근하는 아버지를 기다리던 장면을 묘사한 부분이다. 소설을 처음부터 읽어본 독자라면 상처의 서늘함과 과거에 대한 아련함이 동시에 밀려들어와 울렁거리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여기서 화자들이 겪은 상처의 기억은 아픔인 동시에 아름다운 시절의 한 귀퉁이로 남게 된다. 기억의 양가적 특성을 잘 나타낼 수 있는 ‘회상’을 활용하여 소설을 전개시킨 덕택이다.

잠시 나는, 어린 시절 그 곳에 앉아 아버지가 일터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지난날의 늦여름 오후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언덕 아래로 아버지의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보일 때 누나가 미소 짓던 모습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기쁨처럼 보였다. 그 불빛, 자동차,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안다는 그것은. -<폭풍> 중에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통해 본 ‘상처 도식(圖式)’

여태까지는 본 소설집의 대부분 작품들이 기억의 양면성을 통해 상처에 대한 트라우마적인 접근과 낭만적 분위기의 접근을 동시에 성취해냈음을 확인해보았다. 그러나 소설의 양가적인 접근 장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왜 하필 소설의 제목이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일까? 이 제목을 통해 작가는 모든 단편을 관통하는 한 가지 도식을 제시한다. 바로 상처가 에너지를 잃고 우리들의 현재를 이루는 과거의 기억 중 하나로 가라앉는 과정을 담은 일명, ‘상처 도식(圖式)’이다.

디랙방정식과 상처도식.
디랙방정식과 상처도식.

메인 단편 <빛, 물>에는 디랙방정식이 등장한다. 디랙방정식은 그야말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양자물리학 방정식이다. ‘물질세계’에서 (+)에너지를 갖고 있던 입자에 충격을 가해 에너지 값이 (-)까지 내려가도록 하면, 입자는 빛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값에 가까워지게 되고, 결국에는 ‘비물질세계’에 자리 잡게 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비물질 세계’란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세계 차원에서는 관측되어질 수 없는 (-)에너지의 입자가 존재하게 되는 어떤 시공간이다. 일명 ‘디랙의 바다’라고 불리며, 종종 문학 작품에서 무의식 차원의 세계를 상징하는 장소로 쓰이기도 한다.

여기서 ‘물질세계’를 현재 시점, ‘비물질세계’를 과거, 빛을 방출하며 에너지를 잃는 ‘입자’를 상처, 혹은 아픔이라고 도입해보면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라는 은유가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바로, 아픈 사건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상처 에너지를 잃고 현재의 ‘나’를 이루는 과거로 자리 잡게 되는 과정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상처는 생살이 뜯긴 것처럼 아프지만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다시 누군가의 부재에 익숙해진 일상을 살아 나간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각자의 환경에 맞게. 마치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던 ‘상처 에너지’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줄어든 것처럼. 그리고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 상처의 기억도 예외 없이 우리를 이루는 단단한 지반이 된다. 과거를 회상하고 있노라면 상처의 서늘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뜨거운 상처를 끌어안으며 헐떡였던 순간의 낭만적인 감상에 잠기기도 할 것이다. ‘상처 에너지’가 ‘빛 에너지’로 전환되며 그 시절 전체를 빛나게 해준 것 같다고 느끼면서 말이다. 상처의 아픔은 점차 힘을 잃고 그저 우리를 이루는 하나의 지반이 될 것이다. 이런 도식이 단편들 전반에 깔려 있는 것이다.

상처도식의 작품 적용

<빛, 물>은 주인공 헤더가 사랑했던 노교수 로버트와의 추억에서부터 의사 콜린의 아내가 돼 생활하는 현재까지를 덤덤하게 되짚어 보는 내용이다. 헤더는 당시 남자친구 콜린이 있었지만, 영혼의 단짝 같았던 로버트를 포기할 수 없어 그와 일종의 정신적 불륜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 둘의 관계는 결국 콜린에게 발각되고 헤더는 로버트를 떠나 콜린과 결혼하게 된다. 콜린과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며 다소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던 중 우연히 저녁 식사자리에서 로버트가 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날 밤 그녀는 마당에서 목 놓아 운다. 그녀에게 로버트와 대화하던 시간은 가장 아픈 추억인 동시에 빛나는 시간이었다. 한동안은 그의 존재 자체를 잊고 싶어 하지만, 그 상처의 아픔이 빛을 발하며 에너지를 다해가는 순간, 헤더는 그의 부재를 수용하고, 그와의 시간들을 과거의 한편으로 보낼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본 작품의 화자, 현재의 헤더는 그 시간들의 따뜻함을 덤덤히 이야기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다른 작품의 화자들도 마찬가지다. 서슬 푸른 일련의 사건을 겪고도 그것들을 비극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현재 자신에게 아직까지도 그 트라우마가 영향을 끼친다든지, 이 비극의 영향으로 내가 이런 사람이 되었다든지의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이미 딱지가 진 상처로서 나의 일부가 된 어떤 것들로 보는 시각이다. 그 당시 느꼈던 감정들을 더듬을 뿐이다. 그것들이 대부분 ‘울었다, 무서웠었다’ 등의 과거형으로 진술되기에 그 감정선들은 현재까지로 이어지지 않게 된다. 과거의 상처 에너지는 전부 빛으로 산화되었기 때문에 아픈 기억에 대한 현재와 과거의 입장 사이에 ‘감정적인 단절’이 있는 것이다. 그 기억은 기억 그 자체로 ‘있을 뿐’이다. 각 단편의 화자들은 과거의 아픈 기억을 비물질 세계의 어떤 것으로 내려 보낸 사람들인 것 같다. 날 힘들게 했던 상처의 에너지는 빛으로 발산되고, 상처에너지를 잃은 기억들은 그저 나를 이루는 하나의 세계가 되며 비물질 세계로 내려간다.

‘시련을 딛고 한 단계 더 나아가라’는 로버트의 메시지, 디랙방정식

<빛, 물>에서 로버트와 헤더가 본격적으로 친해진 계기는 기말시험이었다. 로버트는 물리학자로서 학생들에게 ‘한계를 맞닥뜨리는 순간’을 알려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기말 시험에서 학부생으로선 절대 풀 수 없는 ‘디랙방정식’을 문제로 낸다. 다수의 학생들은 로버트에게 불만을 표하며 백지를 제출하고 시험장을 일찍 떠나지만 헤더만이 ‘엉망이지만’ 노력한 흔적이 있는 답안을 제출하고 로버트의 아파트로 초청받게 된다. 여기서 디랙방정식은 상처와 기억의 매커니즘을 표현한 도식일 뿐만 아니라, 아픈 기억을 지표면 삼아 ‘한 단계 더 나아가라’는 로버트의 메시지를 담은 장치가 된다. 여기서 이 소설의 상처에 대한 양면적인 접근을 다시 한 번 찾아볼 수 있다.

죄의식은 우리가 우리의 연인들에게 이런 비밀들을, 이런 진실들을 말하는 이유다.(…)죄의식은 자초하여 입는 모든 상처들이 그러하듯 언제까지나 영원하며, 행동 그 자체만큼 생생해진다. 그것을 밝히는 행위로 인해, 그것은 다만 모든 이들의 상처가 될 뿐이다. 하여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중에서-

아픈 기억과 과오를 풀어내야 할 매듭으로 생각하지 않는 헤더의 자세가 보인다. 상처의 기억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픈 기억은 사라지지 않은 채 그녀 곁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픔에만 메여있지 않는다.

나는 나의 우울증이 계절적인 영향이라고,(…)애써 확신했다. 지금에서야 나는 내가 로버트로부터, 그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고 싶어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나는 그 오랜 세월을 보내고 이제야 학위를 따기 위해 버클리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 우리는 아이를 가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기 시작했으며 나는 머지않아 우리에게 아이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중에서-

과거를 수용함으로써 그녀의 상처는 끝이 나고, ‘견디기’에 가까웠던 그녀의 삶은 한 발짝 식 앞으로 나아가는 변화가 생겼다. 그녀는 소설의 말미에서 ‘나는 간신히 그에 대한 기억을 나의 가장 고통스럽고 내밀한 상실들이 저장되어 있는 마음 한편에 놓아둘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아픈 기억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며 사라지지도 않는다’ VS ‘우리는 상처를 통해 성장한다. 아픔은 우리 삶을 더 다채롭고 빛나게 만든다’

상처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 말하는 낭만적 접근은 남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프니깐 청춘이다!’ 식의 폭력적인 조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본 단편집은 아픈 기억의 서늘함을 집요하게 풀어내는 동시에 그 아픔의 존재를 묻어버리지 않고 과거의 하나로 수용해내는 시선을 유지하면서 상처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비관적인 접근도 아픔에만 골몰하게 만들 위험이 있으나 이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작품 속에서 균형을 이룰 방법을 찾는다. 이 균형이 본 단편집을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로 만들었다.

이상으로 과거의 아픔을 끈질기게 그려내는 소설이 어떻게 해서 모순 없이 ‘상처’에 대한 양가적인 접근을 해냈는지 살펴보았다. 작품을 읽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상처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과 낙관적인 시각이 어떻게 어우러져 있는지, 작가는 어떤 시선으로 상처를 바라보고 있는지에 집중해서 보면 더욱 다채로운 읽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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