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데일리=이병화 시민기자>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사회현상이 나타났다. 정부 주관으로 역사 유튜브 영상이 만들어졌고 기업은 역사 마케팅 방식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갔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 카의 말처럼 최근의 우리는 역사를 통해 정체성을 탐구해 나가고 있다. 

성석제의 소설 잃어버린 인간은 역사를 구성했던 한 인물의 삶을 간략하게 스케치해내며 우리 삶의 중요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이 진실은 일제시대에 일제에 부작위적(잃어버린 인간, p.211, 문예중앙)으로 저항한 인물의 평범성이다.

일제시대는 우리나라의 지난 날을 돌이켜볼 때 그리 멀지 않은 시간과 공간이면서 그 시대에 어떤 방식의 인생을 살았는가가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사회다. 이런 현실에서 소극적으로 일제에 저항한 한 인물의 삶과 이 인물이 독립운동가로 인정받게 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작가 이선대는 어느 날 같은 집안의 재종형의 재당숙모가 죽었다는 부고 전화를 받고 고향으로 간다. 이선대의 재당숙은 그의 부친과 각별했던 사이였다. 이선대의 재당숙인 이봉한은 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고 일본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 후 이의 전도사가 된다.

이봉한은 일제시대에 잠시 고향으로 왔다 다시 중국으로 건너갔지만 그가 중국에서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사람과 같이 일했는지 이선대의 재종형은 몰랐다. 또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그룹으로 대별되는 독립운동 세력의 명단에 이봉한은 보이지 않고 일제에 항거했다는 뚜렷한 존재로서의 이봉한은 없다.

“일제에 잡히거나 고문받고 갇힌 사람들 역시 독립운동을 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봉한은 혈족들의 보호 덕분에 잡히지도 않았고 고문을 받지도 않았으며 갇히지도 않았다. 징용을 가거나 전향을 강요받은 것도 아니며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의 독립운동은 부작위적이며 피동적인 독립운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잃어버린 인간, p.211, 문예중앙)

그렇다고 이봉한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도 없다.

“그가 능동적으로 했던 가장 뚜렷한 일은 청년 시절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것이었으나 청년기를 지나면서 사회주의자로서 이론적으로든 실천적으로든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기록도 고백도 증언도 없다”(잃어버린 인간, p.211, 문예중앙)

나중에 이봉한은 정부가 독립운동가로 인정하게 되는데 첫째로 일제시대 고등경찰의 기록에 이봉한의 이름이 명시됐고 해방 직후 이봉한의 수첩에서 나온 사진 한 장에서 독립운동가로 훈장을 받은 고령출신 인물과 웃고 있던 이봉한의 모습이 두 번째 이유다. 그러나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미약하기만 하다.

“그랜께 아제가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아서 연금이라도 쪼매 나오고 하이 모시왔지. 그기 쉽기 되지도 않아서 신청하고도 한 십 년 걸맀다. 그래고 나온 연금이라는 기 꼭 찬값밖에 안 돼...한대는 남편의 소유였던 땅이며 한때는 자신이 신접살림을 차렸던 곳이 빤히 바라다보이는 마을 한 귀퉁이 셋집에서 적은 액수의 연금을 받으며 봉대 아주머니는 여든세 살까지 살아왔다”(잃어버린 인간, p.221, 문예중앙)

작가는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로서 커다란 족적이 없는 이봉한을 통해 적극적으로 일제에 항거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올바른 양심을 가지고 살려고 했던 민(民)의 모습을 이선대의 재종형의 목소리로 표현하고 있다.

“사람이 옳기 살고도 올바른 대접을 못 받으이 올바른 세상은 아이지”(잃어버린 인간, p.206, 문예중앙)

작가는 일제시대의 평범한 이봉한이라는 인물을 통해 일제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며 양심을 지켰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던 수많은 민초들을 그려내려 했고 죽은 재당숙모의 모습에서 삶의 중요성을 표현했다.

“영정 속의 큰 눈은 그런 그들을 ‘이제 와서 왜’하고 의아하게 바라보는 듯했다”(잃어버린 인간, p.225, 문예중앙)

성석제의 잃어버린 인간은 일제시대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나 나름대로의 양심을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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