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데일리=김승현 시민기자> 노동부 감독관이 요청한 모든 서류를 전달하고 나면, 감독관은 짧게는 며칠에서 몇 주간 서류를 검토하며 실제로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는지 혹은 체납된 임금이 있는지 등을 확인한다. 감독관은 내게 진행 상황을 전달하며 얼마 전’에 조사 결과를 전달해왔다.

“사내 취업 규칙에 따르면 승현씨가 전달해주신 서류의 연차는 4일이 사라지는 게 맞아요.”

존재조차 몰랐던 취업 규칙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감독관이 말하는 취업 규칙이 뭔지 이해가 되지 않아 몇 차례 감독관에게 그게 뭐냐고 되물었고 감독관이 내게 설명했다. 사주가 회사를 법인으로 설립하면서 취업 규칙을 만들어뒀다는 이야기였다.

“저는 취업 규칙에 관해 전혀 안내받은 내용이 없는데요.”

“…사측에서는 취업 규칙에 대해 전달했다고 하셔서요.”

“지금 처음 들어요. 퇴사를 이야기할 때도 취업 규칙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조차 안 적 없었고요. 녹취록을 한 번 확인해주시겠어요?”

“사주는 사무실에 있는 책장에 취업 규칙을 비치해뒀다고 하시거든요.”

“아니요. 전혀 전달받은 바 없고 사무실에 사원들이 공용으로 쓰는 책장은 없었습니다.”

노무사를 찾아가 계산해서 보낸 엑셀 파일에서 몇 개를 가볍게 지워내는 감독관의 이야기에 나는 화가 났고, 맹세코 들어본 적도 없는 취업 규칙 때문에 내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게 된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나는 감독관에게 물었다.

“저는 제 계약서를 토대로 정산했는데 어떻게 취업 규칙에 맞춰서 내용이 바뀔 수 있나요?”

“취업 규칙의 교부는 필수가 아닙니다.”

“교부가 필수는 아니지만 지금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취업 규칙이 제 계약서보다도 상위 개념인 거네요?”

“…”

“취업 규칙을 만들어놓고 금고에 넣어두고는 사원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비치를 해뒀다며 나중에 계약서에 기재된 내용과 다른 방식으로 임금을 정산하는 경우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일단 사측에서는 사무실에 비치했다고 하니까요…”

감독관은 애매하게 말을 돌렸고 통화 말미에는 결국 연차는 사주가 말하는 대로 몇 개가 사라질 예정이며, 그 외에 내가 요구했던 야근 수당에 대해서는 다시 조사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나는 취업 규칙이 뭔지 헤맸고 근로계약서 보다 상위 개념이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처럼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서는 이를 확인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회사랑 사이가 틀어졌거나, 틀어질 것도 감수하는 게 아니라면 사측에 “취업 규칙이 있다면 보여주세요”라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상사나 사주에게 요구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열람하는 방법이 없는지 확인해봤고 고용노동부의 민원마당에서 나는 이와 같은 답변을 찾을 수 있었다.

‘회사의 취업규칙은 어떻게 확인해야 합니까?’

-취업규칙은 근로자들이 자유로이 열람할 수 있는 장소에 항상 게시하거나 갖추어야 하는바, 그렇지 않다면 회사 인사담당자에게 취업규칙을 보여달라고 하셔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게 힘드니까 검색한 건데 끝내 고용노동부의 입장은 회사에 요구하라는 것이었다. 입사하면 가장 먼저 처리하는 게 근로계약서 작성이 아닌가. 그럼 입사를 결정함과 동시에 취업규칙이 있다면 보여달라고 해야 하고 그걸 토대로 회사와 작성할 근로계약서에서 달라질 내용이 있다면 뭔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거라면, 최소한 근로자에게 취업 규칙을 배부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이미 몇 년 전부터 취업규칙을 배부하지 않는 사업장이 근로계약서에 기재된 내용을 뒤엎어 기사가 된 사례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내가 다녔던 곳은 매우 작은 사업장이었고 취업 규칙에 대해 전혀 이야기를 들은 바 없으나, 그들은 내가 입사하기도 전에 작성해둔 취업규칙이 있었고 결국 나는 나도 모르는 그 규칙에 따라 내가 정산받아야 할 금액이 줄어들었다. 이 글을 읽으며 설마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취업규칙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면 꼭 한 번 확인해보길 바란다.

물론 노동부에서 말하는 대로 회사에 물어보면 된다. 그걸 어떻게 하느냐고? 나도 잘 모르겠다. 이 부분에 대해선 나도 조언을 해줄 수가 없다.

열심히 하면 다 되는 줄 알았고, 돈과 인정은 내 노력에 비례하진 않아도 최소한 어느 정도는 따라올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후려쳐지기에 십상이었고 귀여움받는 막내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몫을 챙기기 위해 눈을 세모나게 뜨게 됐다. 그리고 이게 꼰대들이 보는 이기적인 90년생일 것이다. 우리에게 웃으며 즐겁게 일하면 모든 게 따라오는 그런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으며, 애사심을 핑계로 상사 혹은 대표와 잔을 주고받는 나이브한 신입은 더 이상 만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취업규칙, 이 네 글자만 검색해도 수년 전부터 끝없이 많은 기사가 쏟아져나왔음에도 아직까지 바뀌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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