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데일리=김수지 시민기자> 비가 내리는 파리의 밤. 마차를 이끄는 말발굽 소리와 재즈가 거리를 가득히 매운다. 바라만 봐도 사랑에 빠질 것 같은 도시에 잔뜩 화가난 얼굴의 사내가 거칠게 식당의 문을 연다.

“드디어 밀린 원고료를 받아냈어. 근데 말도 안되는 돈을 건네지 뭐야. 이게 내 전재산이야. 여기서 제일 좋은 마고와인을 내줘.” 자신이 가진 전재산을 와인 한 병에 전부 쏟아내는 대책없는 남자 헤밍웨이다.

헤밍웨이의 와인 사랑은 그의 걸작들 만큼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의 샤또 마고와인(Château Margaux)을 많이 애정하여 그의 손녀 이름에도 마고를 붙여 마고 헤밍웨이(Margaux hemingway)로 지었을 정도였다.

여기서 마고(Margaux)란 보르도 메독 지역의 이름이다. 조금 더 알기쉽게 ‘샤또 마고와인’을 한국의 ‘안동 소주’에 빗대어 설명한다면, 경상북도→보르도(Bordeaux), 안동시→메독(Medoc), 풍산읍→마고(Margaux) 정도가 되겠다.

마고 지역 중에서도 1등급 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을 샤또(Chateau) 마고와인이라 한다. 샤또란 프랑스어로 성(城) 혹은 양조장의 뜻이 있다. 한국에서 여러 지역에서 소주가 생산되지만 안동 소주가 전통있는 양질의 소주로 유명하듯이 프랑스도 대부분 지역이 와인을 생산해내지만 보르도 메독지역의 샤또 마고와인 양조장이 오래전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와인의 왕국 프랑스에서 수 많은 후보의 와인을 제치고 샤또 마고와인이 ‘와인의 여왕’으로 불리는데는 와인의 테루아(Terroir)가 큰 몫을 한다. 테루아란 포도 성장 과정에 영향을 주는 모든 자연환경을 말한다.

각 지역의 테루아에 따라 자라나는 포도의 맛도 다르고 자연히 와인 맛도 각 지역의 개성을 따른다. 마고의 테루아는 주변 지역보다 조금 높은 고도와 오래된 자갈밭인데 이 자연환경 속에서 자라난 포도는 탄탄한 껍질과 보다 풍성한 과즙을 머금고 자라게 된다. 탄탄한 껍질은 마고와인의 균형잡히고 벨벳같은 탄닌(Tannin)감을 만들어 내고 풍성한 과즙은 붉은 과일, 감초, 토스트향과 함께 마치 꽃 한 다발을 그대로 삼킨 것 만 같은 향미를 만든다. 비록 빈티지에 따라 맛의 차이는 있지만 작황이 좋은 해에는 샤또 마고와인을 상대할 와인이 없을 만큼 샤또 마고와인 특유의 기품과 견고함은 꾸준히 여왕의 자리를 유지하게 해주었다.

“프랑스 사람들의 마음 한 가운데에는 보르도가 있고 보르도의 한 가운데에 마고가 있다”

샤또 마고와인이 정확히 언제부터 만들어 졌는가에 대한 기록은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지만 샤또 마고가 속해있는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와인역사는 약 2000년여 전부터이다.

오랜 역사동안 샤또 마고와인은 와인의 여왕이란 훈장만 있진 않았다. 샤또 마고와인 이름은 프랑스 공주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 공주에서 유래하는데 그녀의 애칭이 바로 마고였다. 1872년 8월 18일 노트르담에서 마고공주와 앙리 4세의 결혼식이 있었다. 사실 그녀의 결혼은 결혼식 자리에 모일 신교도 세력을 없애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고 축복받아야 마땅할 날에 약 2만명의 신교도인들이 학살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아름다웠지만 비운의 역사 공주 마고.

샤또 마고 와이너리에서 왜 그녀의 이름을 따라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만큼 와이너리 역시 그러했다. 샤또 마고의 밭을 탐낸 여러 세력때문에 와이너리 소유주 또한 여러번 바뀌면서 이권전쟁이 심각해지자 프랑스 정부에서 제지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1855년 나폴레옹 3세에 의해 샤또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Roschild), 샤또 라뚜르 (Chateau Latour), 샤또 오브리옹(Chateau Haut-Brion), 샤또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Rothschild)와 함께 보르도 5대 샤또로 지정되면서 샤또 마고와인은 명실상부 보르도 최고의 와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단어 하나하나에도 심금을 울렸던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는 1961년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 또한 그의 사랑하는 손녀이자 뛰어난 배우였던 마고 헤밍웨이도 그렇게 생을 마감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끝이 찬란했던 인생의 전부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인생은 마치 샤또 마고와인처럼 화려했고 향기로웠지만 아픔도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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