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데일리=이병화 시민기자> 비슷한 나이대의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면 이 모습에 빗댄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언론사에서의 작가 경력도 있는 소설가 조남주는 1982년생인 가상의 인물 김지영을 통해 우리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려는 것 같다. 독자들은 최근 영화화되어 더욱 입에 오르내리게 된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의 34살의 여성 직장인인 김지영의 인생에 기대어 각자의 삶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다. 여기에 82년생 김지영을 읽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가 조남주는 가상의 인물 김지영의 인생을 답답하게 바라본다. 그러나 김지영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실상 작가의 인생과 김지영의 삶은 비슷하다고도 말한다. 여성과 남성에 대한 생물학적,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의 삶이 갖는 동질성인지는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정형화되고 프로그램화된 사회의 패턴들 속에서 작가와 김지영은 마치 물레방아처럼 돌며 사회에서의 일임을 성실하게 이행해나갔을 것이다.

작가와 독자는 어느 지점에 김지영의 인생을 두고 각자의 거리에서 자신의 인생을 떠올리며 웃고 아쉬워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이 주는 마음의 휴식일 것이다. 또한 김지영과 같은 인생을 자의 혹은 타의로 영위하지 못하고 있는 동시대의 독자들에게는 김지영과 같은 삶을 구경하는 것으로도 인식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지영과 정대현은 부부다. 김지영은 토익, 학점, 인턴, 공모전 등 입사를 위한 스펙을 준비해 홍보대행사에 다니고 정대현은 중견기업에 다닌다. 둘 사이에 딸인 정지원 양이 있고 정지원 양은 1층에 위치한 어린이집에 다닌다. 육아는 김지영이 담당한다.

김지영은 공무원인 부친의 슬하에서 자랐다. 김지영은 한 반에 정원이 50명씩 15반이 있던 국민학교를 나왔고 남녀공학의 중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는 여고를 다녔고 PD직을 지망했던 김지영은 교대를 권했던 모친의 바람과는 달리 서울 소재 대학의 인문학부에 진학하게 된다.

1997년에 있었던 IMF라는 위기를 맞은 김지영의 부친은 명예퇴직 후 점포를 창업하며 생활을 영위한다. 취업을 준비하던 김지영은 스카이 대학(서울, 연・고대)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대기업은 아니더라도 월급이라도 제때 나오는 곳에 취업하기도 힘든 현실을 간접적으로 접하다가 직원이 50여명 되는 홍보대행사에 대학 졸업 전에 취직하며 회사의 아이디카드를 목에 걸고 다닌다.

김지영은 홍보대행사에 취직한 후 남자친구를 부친과 모친에게 소개하지만 취직 이후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의 상황은 남자친구와의 결별로 이어진다. 남자친구와의 이별 후 김지영은 다른 이성과 몇 번의 소개팅을 하지만 극도로 가까워지지 못한다. 그러다가 김지영은 정대현과 결혼하고 다니던 회사를 사직한 후 시급 5600원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는다.

김지영의 이러한 인생은 ‘취업학원’이라는 여론으로 명명되는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취업, 결혼, 출산, 휴직, 재취업 등으로 이어지는 정형화된 길이다. 보통 25살 즈음에 직장에 취직한 후 경제력(능력)을 키우고 이에 따라 평가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로는 학업, 유학 등으로 취업이 늦어지고 이에 따라 결혼, 출산이 늦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서른부터는 적극적인 경제생활을 일반적으로 한다. 김지영도 이와 다르지 않고 취업 후 김지영이 겪게 되는 몇몇의 일들은 우리에게 메시지를 준다.

작가는 김지영이 다니던 홍보대행사의 여성 팀장을 통해 고착화 된 직장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분업에 대한 정형적인 문화를 꼬집는다. 직장에서의 역할이 있다면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의 참여도 공정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 막내들은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귀찮고 자잘한 일들을 다 하더라고. 남자들은 안 그래요...근데 왜 여자들은 알아서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82년생 김지영, p.112, 민음사)

작가는 직장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임금 현실도 밝힌다. 내용이 같은 근로를 한다면 동일하게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선언은 우리의 사회 현실에서 이미 익숙하다.

“입사부터 지금까지 남자 동기들의 연봉이 쭉 더 높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82년생 김지영, p.124, 민음사)

그리고 김지영과 정대현이 혼인신고를 하며 작가는 자녀가 부의 성을 따르는 현상에 거시적으로 문제의식을 갖는다. 혼인신고의 내용 중 자녀의 성과 본을 모의 성과 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는지에 대한 질문지의 내용에 김지영이 답할 즈음이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82년생 김지영, p.132, 민음사)

직장을 퇴사하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김지영에게 남편 정대현은 과연 김지영이 하기를 원하는 일인지에 대한 의사를 묻기도 한다.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는 김지영은 아이스크림 가게의 점원 아르바이트직에 흥미를 두지만 이는 순전히 가계의 경제가 원인이다. 정작 김지영은 이 아르바이트직에 비전을 찾지 못하고 평소에 아이스크림에 흥미가 있지도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야?”(82년생 김지영, p.161, 민음사)

“사실 김지영 씨는 아이스크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아르바이트를 성실히 한다고 정직원이 되거나 매니저가 되거나 원하는 부서에서 일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평범한 월급쟁이 가정에 70만원 가까운 월수입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다.”(82년생 김지영, p.161, 민음사)

이처럼 작가는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바쁜 평범한 부부의 이야기를 그려내며 이들 부부의 삶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경력단절녀’라는 조어가 있듯이 짧지만 고민하게 되는 김지영의 직장생활을 통해 우리 사회의 더 나은 미래에 합당한 작은 고민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낮은 혼인율, 출산율이라는 통계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암울한 현실에서 김지영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은 많은 이들에게 읽는 동안이나마 반성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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