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를 체험자를 위한 숙소가 별도로 마련돼 있다. 1인실, 2인실, 4인실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템플스테이를 체험자를 위한 숙소가 별도로 마련돼 있다. 1인실, 2인실, 4인실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대한데일리=오은희 시민기자> 그곳의 아침은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몸을 정갈하게 씻고 나오면 잠들었던 밤과 다를 바 없는 캄캄한 하늘이 날 마주한다. 서늘한 아침 공기에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도착한 법당 앞에는 더 이른 시간부터 도착한 신발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향냄새 가득한 법당 안에 들어서면 신발 주인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기도를 올리고 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10분쯤 참선(명상)을 하고 있으면 스님의 목탁 소리와 함께 108배가 시작한다. 스님의 선창에 맞춰 염불을 외고 절을 하다보면 언제 추웠냐는 듯 어느새 몸에 미지근한 열이 난다. 공식적인 예불이 끝나면 벗어뒀던 신발을 다시 신고 공양간(식당)으로 향한다. 여전히 어둑한 하늘에서는 하얀색 눈이 펑펑 내리고 젊은 스님 한 명이 조용히 마당을 쓴다. 경남 합천 가야산에 위치한 해인사의 아침이다.

얼마 전 갑작스럽게 해인사로 템플스테이 체험을 하러 떠났다. 템플스테이를 체험하는 여느 사람들처럼 나 역시도 마음이 답답한데 뭘 해도 나아질 기미가 없어 마지막 대안으로 템플스테이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법당 기와 아래에 달려있는 풍경
법당 기와 아래에 달려있는 풍경

평일이어서 그런지 참가자들은 나, 커플 한쌍, 나이가 지긋한 외국인 아줌마 이렇게 넷이 다였다. 숙소를 배정받고, 체험용 법복으로 갈아입은 뒤 간단한 교육을 들었다. 사찰 내에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규칙은 묵언이었다. 대화의 홍수 속에서 살다가 갑자기 맞이한 묵언은 쉬운 듯 쉽지 않은 고행이었다.

저녁 예불을 드리기 전까지는 자유시간 이어서 사찰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해인사는 국내 최대 사찰로 천천히 한바퀴를 도는데 30분 정도가 걸렸다. 하이라이트는 제일 마지막에 등장하듯 가파른 계단 끝 사찰 제일 꼭대기에 장경판전이 숨어있다. 장경판전은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목조건물이다. 놀라운 점은 팔만대장경뿐 아니라 장경판전 역시 세계문화유산이며, 팔만대장경보다 앞서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점이다. 800년동안이나 대장경판을 손실 없이 보관한 데는 과학으로 설명하기엔 어려운 불심이 담겨 있는 듯했다. 장경판전 창살 틈으로 팔만대장경을 바라만 보아도 괜히 벅찬 기분이 들었다.

팔만대장경이 보관 돼 있는 장경판전 전경.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팔만대장경이 보관 돼 있는 장경판전 전경.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해가 어스름히 지자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법고(북) 소리가 사찰 전체에 울려 퍼졌다. 스님들과 불자들은 해인사 내 가장 큰 법당인 대적광전으로 모였다. 예불은 큰스님의 목탁 소리에 맞추어 다 같이 불경을 외고 절을 올리는 의식이다. 목탁 소리와 불경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예불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위해 공양간으로 이동했다. 공양간에서는 절대 묵언이 철칙이다. 식당에는 들어가자마자 합장 인사를 하고 밥을 먹고 싶은 만큼 덜어 먹는다. 스님들의 발우공양 정신을 이어 잔반은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어야 한다.

이렇게 글로 풀어쓰니 템플스테이 체험동안 많은 것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템플스테이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정말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아침 예불, 저녁 예불, 108배 시간을 뺀 나머지 모든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항상 무언가를 해야 했던 나로선 처음에 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무척이나 어색하고 심심하게 느껴졌다. 처음엔 그 시간 동안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 책을 읽거나 글을 끄적댔다. 몸은 속세를 떠나왔지만 마음은 속세를 쉽게 놓지 못하는 셈이었다. 그러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멍 때리고 앉아있어 보기로 했다.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걸 깨닫게 됐다. 멍 때리고 앉아있어도 불안해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108배보다 새벽 예불보다 나에겐 더 어려운 수행이었다.

템플스테이 체험자에게 체험용 법복을 따로 제공해준다.
템플스테이 체험자에게 체험용 법복을 따로 제공해준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템플스테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도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사소하고도 중요한 교훈을 내게 줬다. 떠나기 전 가진 답답한 마음을 모두 해소할 수는 없었지만 해인사에서는 ‘왜 이렇게 답답할까’라는 고민도 잠시 멈추게 했다. 마음이 답답할 때, 생각 정리가 필요할 때 템플스테이를 떠나보자. 삶의 쉼표가 필요할 때 절은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하니까. 우리는 그저 떠나기만 하면 된다.

*해인사에는 △체험형 △외국인 전용 체험형 △다반사(차담)형 △휴식형 네 종류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있다. 필요에 따라 선택해 신청하면 된다. 신청은 일주일 이상 여유를 두고 하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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