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단] 소년이온다, 1980년 광주의 '나와 너'
[시민기자단] 소년이온다, 1980년 광주의 '나와 너'
  • 이병화 시민기자
  • 승인 2020.05.13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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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책이 있는 방(5)

<대한데일리=이병화 시민기자> 5월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항쟁이 있었다. 정권의 공백을 군부가 차지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는 광주에서 민주 항쟁으로 이어졌다. 근래에도 당시 신군부였던 전두환에 대한 재판이 이뤄졌으며 전두환은 재판에의 출석으로 이 사회에 답했다. 한강이 지은 소설 소년이 온다는 광주항쟁의 사실성을 구현하고 있다. 군부의 폭력이라는 역사적 현실에 대해 묻는 것은 5.18의 기념을 앞두고 의미가 있다.

작가는 2인칭인 ‘너’가 1980년의 광주를 경험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때의 광주는 ‘너’와 그 날들을 겪는 다른 인물들을 통해 독자에게 경험되고 작가는 이들로 치욕과 양심을 물으며 삶을 살아가는 의미를 되새긴다. 당시 광주의 상황에 대한 국가의 군부가 했던 행위들의 과도함들이 한국 사회의 각계에서 문제제기되고 있는 현실에서 작가 한강은 그때 현장에 있던 시민들을 현실성 있게 부른다. 이들이 경험했던 그 날의 광주는 이른바 ‘빵’만으로만 살 수 없는, 치욕을 아는 인간의 정신을 독자에게 깨우쳐준다.

작품의 ‘너’는 1980년 광주의 상무관에서 광주 시민들이 안치된 관과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가족을 찾는 이들이 강당에 하얀천으로 임시안치된 시신을 들춰보는 장면을 ‘너’는 본다. 이런 장면을 본 ‘너’는 몸과 혼에 대해 생각하고 초를 간다. 이 시신들 중에 대검이나 곤봉에 맞은 상처를 ‘너’는 본다. ‘너’는 이 시신들에 애국가를 불러주고 태극기로 감싸주는 것이 군인들이 죽인 것이었기 때문에 다소 의아해한다. 시민들은 기관총과 탱크를 갖춘 정예부대의 계엄군과 맞서 싸우다 총알에 맞는 등 살상당했고 강당에는 시취가 가득하다.

김재규가 쏜 총에 맞아 박정희는 죽게 되고 그렇게 생긴 권력의 공백을 신군부가 차지하는 것이 한국의 현대사 중의 한 부분이다. 민주사회에서 시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권력은 정당성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았고 현재도 누구나 알고 있다. 민주사회의 권력자는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바쁜 시민들의 힘을 위임받은 것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만약 위임된 권력을 마치 관료제가 뿌리를 내리기 전 고대의 귀족처럼 사유화해 행사하려 한다면 그 행위들은 민주시민에 의해 저지당한다. 왜냐하면 민주사회의 권력은 시민이 위임했기 때문에 이 권력은 시민들에 의해 소환된다.

그러나 현실성에 기반한 이 작품에는 국가의 군부에 의해 총살당하고 검열당한 시민이 담겨져 있다. 군부에 의해 검열당한 출판사의 직원인 작품의 김은숙은 이러한 현실에서의 치욕을 말하며 산다는 것의 의미를 독자에게 잠시 묻는다.

“묵묵히 쌀알을 씹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소년이 온다, p.85, 창비)

검열당해 출판하지 못하게 된 현실을 맞닥뜨린 김은숙에게는 의심과 질문만 남게되고 인간과 문장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김은숙은 결과적으로 거악의 사회에서 죽음보다는 삶을 긍정한다.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진실,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소년이 온다, p.95, 창비)

그리고 작품의 ‘나’는 광주의 상황에서 시민을 제압한 군인들에 맞선 시민들의 양심을 이야기한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소년이 온다, p.114, 창비)

신군부의 폭력에 맞선 광주시민들의 양심과 이들의 기록을 2013년인 오늘날에 사는 ‘나’는 이렇게 바라본다. 작품의 ‘너’가 과거의 광주에 살았고 현재에 없다면 작품의 ‘나’는 현재에 살아 ‘너’가 살았던 과거를 반추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날의 기록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다.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살상들이었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소년이 온다, p.206, 창비)

민주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현재, 시민 앞을 총과 칼로 위협하는 군인의 행동은 볼 수 없다. 이런 사회에서 대검과 총알이 시민을 향했던 한국의 지난 장면을 말하는 것은 이 무기들이 생명을 앗아갔던, 우리 주위에 함께 대화를 나누고 살았을 법한 시민들이 가졌던 정신을 다시 한 번 기리는 의미를 가진다. 권력자가 시민의 뜻에 의하지 않고 마음대로 행사하는 권력이 아닌 우리가 주체인 사회가 올바른 것이라는 1980년의 광주시민들이 갖고 있던 신념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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