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단] 진실을 유보해서 얻은 비극의 아름다움, 리플리
[시민기자단] 진실을 유보해서 얻은 비극의 아름다움, 리플리
  • 고경은 시민기자
  • 승인 2020.05.27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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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한데일리=고경은 시민기자>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본 사람이라면 거짓말의 쾌감을 잘 알 것이다. 대담하고 재치 있는 거짓말로 파일럿에서부터 의사, 변호사가 되고 거기서 비롯된 부와 명예를 누리는 모습이 영화 속에서 속도감 있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관객은 진실이 드러날 위기를 모면하며 가까스로 이룩한 화려한 생활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더 나아가 거짓 속에서 방황하는 주인공이 구원받게 되기를 갈망하기도 한다. 때문에 마침내 진실이 드러나고, 주인공이 거짓에서 벗어나 사건이 일단락되는 데에서는 모종의 카타르시스까지 경험하게 된다. ‘거짓말’을 소재로 한 영화가 관객을 쥐고 흔드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런 문법을 무참히 져 버리고 관객을 감정의 수렁으로 밀어 넣는 영화가 있으니, 바로 맷 데이먼 주연의 <리플리>이다. 우리에게는, 허구를 말하고 그것을 실제라 여기는 정신이상 증세를 이르는 ‘리플리 증후군’으로 더욱 친숙한 이름일 것이다. 같은 시기 <아메리칸 뷰티>와 겨루면서 많은 상을 받진 못했지만 뛰어난 영상미와 연출,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로 명성이 자자한 작품이다. 극중 디키 역을 맡은 주드 로가 이 영화로 2000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프린스턴 음대의 피아노 조율사였던 리플리는 어느 날 능숙한 거짓말로 대기업 회장의 눈에 들고, 회장의 망나니 아들 디키를 이탈리아에서 데려와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회장의 금전적 지원 하에 이탈리아에 도착한 리플리는 또 다시 거짓말로 디키와 친교를 맺는다. 아름다운 이탈리아 해변가 집에서 리플리는 디키와 그의 약혼자 마지와 함께 호화로운 삶을 누린다. 자신의 초라한 삶과는 전혀 다른 디키의 삶에 매료된 리플리는 점차 그를 모방하는 것에 집착한다. 

그의 모든 모습을 놓치지 않고 손과 눈에 담고 싶어 하는 리플리의 모습은 작중에서 동성애처럼 묘사되기도 하는데, 이런 그의 탐닉 행위는 결국 디키와의 다툼으로 번지고 다투는 과정에서 리플리는 그만 그를 죽여 버리고 만다. 화면은 수평으로 이동하며 화창한 여름날, 빛 무리가 일렁이는 바다를 비춘다. 이동의 끝에는 찰랑이는 피 속에서 디키를 안고 있는 리플리의 모습이 비춰진다. 디키의 피 속에서 리플리는 디키로 다시 태어난다. 그의 거짓말은 이제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는 살인을 숨기기 위해 디키인 척 용의주도하게 주변사람들을 속이고 다닌다. 진실을 알게 된 디키의 친구를 살해하기까지 한다. 매순간 진실이 그의 발끝까지 쫓아오는 듯했으나, 이탈리아의 허술한 수사방식 덕분에 그는 모든 죄를 디키에게 덮어씌우고 무사히 사건을 마무리한다. 심지어는 그의 유서를 조작해 그 재산까지 상속 받게 된다. 이제 리플리는 꿈에 그리던 이탈리아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꾸려갈 수 있게 된다. 그의 정체를 계속 의심하던 약혼자 마지는 “모든 일이 당신만 잘 풀리네요”라며 비꼬고 미국으로 떠난다.

정말로 리플리의 모든 일이 잘 풀렸다.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달리 그의 거짓말은 단 한순간도 탄로 나지 않았다. 근데 왜 이렇게 가슴 먹먹한 것일까. 자신의 안위를 위해 만든 거짓의 세계가 완벽에 이르게 된 순간 역설적으로 리플리의 존재 증명은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리플리는 모든 사건이 일단락되고 동성 연인 피터와 여행길에 오른 시점에서 거짓의 완성을 위해 또 한 번의 살인을 저지른다. 자신을 디키로 알고 있는 여인을 배에서 만나고 다시 위기에 몰린 리플리는 결국 어떤 거짓말도 아닌 연인 피터를 죽이는 걸로 상황을 모면한다. ‘디키’ 역할을 벗어나 정말 ‘리플리’로서 연인과 행복한 삶을 살려던 그의 계획은 무너지게 되었다. 리플리의 앞날은 어떨까? 항해가 끝날 때까지 ‘디키’를 연기할 것이다. 정박하고 나선? 이탈리아의 낯선 도시에서 누구로 살 수 있을까? 이탈리아에서 리플리를 알던 모든 인물들은 죽거나 미국으로 떠났다. 피터 역시 제 손으로 없앴다. 그는 어떻게 타지에서 자신의 존재 증명을 할 것인가? 어떤 방법도 없다.

리플리도 그것이 두려웠나 보다. 그는 피터를 죽이기 앞서 “늘 내가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 거짓말을 해왔어, 이젠 그 누구도 나를 찾아내지 못할 거야”라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피터 등에 기대 누워 이런 질문을 한다. ‘톰 리플리만의 좋은 점은 뭐야?’ 피터는 대답한다.

‘톰은 유능하다, 다정하다,…, 톰은 나에게 말해주지 않는 비밀이 있다, 나는 그걸 말해줬음 좋겠다, 톰은 악몽을 꾼다, 그건 좋지 않다, 톰에게는 그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 이건 좋다. 톰은 내 목을 조른다, 조른다…’

피터를 살해하는 장면은 스크린에 직접 나오지 않는다. 빈 방 안에 주저앉은 리플리의 모습 위로 죽어가는 피터의 신음과 리플리의 오열이 겹쳐진다. 멍하니 있는 리플리를 비춘 거울이 흔들린다. 화면은 거울 속에 비친 그를 오랫동안 보여준다. 그러다 이내 장롱에 붙어있던 거울이 닫히고 화면은 암흑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진짜 리플리’는 지하 객실에 영원히 갇힐 것을 암시하며 영화는 끝난다.

피터는 영화에서 ‘구원자’의 이미지를 갖는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nobody) 진짜가 되기보단, 거짓된 누군가(somebody)’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는 리플리를, 거짓 없이도 의미 있는 존재(somebody)로 받아들이는 유일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선박의 지하 객실에서 나눈 둘의 마지막 대화에서 관객은 드디어 리플리가 거짓에서 놓여나 정체성을 되찾게 될 거라는 기대를 품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피터는 본래 모습을 숨기고 잠근 ‘지하실의 열쇠’를 주고 싶어지는 ‘특별한 사람’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리플리가 예배당 위에 있는 그를 올려다보는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오르골 소리와 소년의 성가는 너무 숭고해서 관객으로 하여금 피터를 구원자로 믿도록 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결말은 어땠는가? 그렇게 구원의 카타르시스를 바라던 관객은 감정의 절정에 내몰린 채 현실세계로 내팽개쳐진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주인공은 거짓을 청산하고 새 삶을 살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과거 트라우마도 극복하고 위조 수표를 만들던 자신만의 특성을 인정받아 새로운 직업도 갖게 된다. 거짓말을 중심소재로 삼은 성장영화인 셈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단 사실이 결말에 일견 타당성을 부여하고, 관객은 결말부에서 감정의 해소를 맛본 뒤 굉장한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

반면 <리플리>는 진실에 대한 갈증과 그 해소 없이 끝난 결말로 굉장한 여운을 빚어낸다. 애초에 어둡고 거친 이미지들이 계속 됐더라면 이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을 거다. 러닝 타임을 가득채운 지독하도록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풍경 역시 관객의 감정을 어지럽혔다. 어두운 지하실에서 괴로워하고 있을 리플리의 진짜 모습을 아는 관객들은 어느 장단에 맞출지 갈피를 못 잡고 신경 쇠약 직전까지 갔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묘한 충족감이 피어올라 왔을 것이다. 지는 꽃잎에서 비극의 아름다움을 봤던 조지훈의 시, <낙화> 속 화자의 마음이 되어 영화 <리플리>를 봐도 좋겠다. 그곳에는 무참하게 부서진 여린 청춘이, 폐허가 된 도시를 비추는 태양처럼 빛나고 있을 것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슬픈, 너무 슬퍼서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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