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강세이 편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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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데일리=이봄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3월 국회 업무보고에서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화폐단위 변경)’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이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와 이원욱‧최운열‧심기준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명재‧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 등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및 정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13일 ‘리디노미네이션을 논하다’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의 가치는 그대로 놔두고 액면에서 ‘0’을 지워내는 ‘화폐 액면 단위 변경’을 말한다. 예컨대 현재 1000원에 해당하는 화폐 액면가를 1원 또는 10원으로 축소하는 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53년 화폐 단위를 ‘100원’에서 ‘1환’으로 조정했으며 이후 1962년 ‘10환’을 ‘1원’으로 변경했다. 1962년 화폐개혁을 마지막으로 50여년 동안 동일한 액면 단위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 국민총소득(GNI)는 4800배 이상 불어났으며 1인당 소득도 2400배 넘게 증가했지만 화폐단위가 1960년대에 정해진 기준을 따르면서 화폐가치는 후진국 수준에 머무르는 상황이다.

전 세계에서 대미 달러 환율이 1000 이상인 국가는 25개국으로, 이 중 OECD 회원국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발제를 맡은 임동춘 국회 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장은 “리디노미네이션의 긍정적 효과는 계측이 쉽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반면 부정적인 효과는 계량화가 쉽고 단기간에 나타나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며 “리디노미네이션은 중앙은행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충분한 사전 논의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며 약 10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리디노미네이션의 장점으로는 금융거래의 편의성이 높아진다는 점이 꼽힌다. 이미 일부 카페에서는 표기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5000원 짜리 커피를 5.0으로 표시하는 등 자체적인 화폐단위 변경을 시작했다.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연구위원은 “커피숍, 음식점은 5000원, 1만원을 각각 5.0, 10.0으로 표시하며 화폐단위가 불편하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정치권과 제도권은 리디노미네이션이 지하 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원 확보가 아니라 단순히 0만 지우는 작업이라는 목적을 정확히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지속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저물가 상황도 인플레이션이라는 리디노미네이션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낮출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다.

조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은 올해 들어 4개월 연속 1%에 못 미치는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며 “과거에 비해 물가상승에 대한 부담이 낮아졌다는 점은 리디노미네이션 시에 우려되는 중요한 환경적 부담이 완화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리디노미네이션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발생, 균일하지 않은 소득 재분배 효과와 같은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협상력에 따라 가격 변화가 균일하게 이뤄지지 않을 수 있어 협상력이 낮은 주체들이 반올림‧반내림을 진행하며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최양오 고문은 “3월 말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 이후 금, 달러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이는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현금 없는 사회의 문턱으로 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단위를 변경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박정우 이코노미스트도 “리디노미네이션이 진행되면 현금 실물에 투자하며 부동산을 중심으로 투기자금이 몰리거나 해외로 이탈할 우려가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물가 상승으로 인해 소비가 둔화되며 경제 불안 심리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금융시스템 교체 과정에서 사용되는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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