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대했던 나의 첫 자세
우리에겐 ‘해리포터’ 그 자체인 배우, 다니엘 래드클리프. 그는 탑 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해리포터> 시리즈 외에는 주로 B급 감성의 영화에 출연하는 기이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마도 십 년 넘게 맡아온 해리포터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 그가 이번엔 실화 바탕의 스릴러물에 도전했다. 프랜시스 애넌 감독의 <프리즌 이스케이프(2020)>다. 흑인 인권 운동과 감옥 탈출 스릴러가 한 데 섞인 특이한 작품이다. 이번에도 범상치 않은 선택을 한 그의 신작은 과연 어떤 작품일까? 호기심과 반가움을 동시에 안고 곧장 극장으로 달려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탈출 스릴러
영화는 1978년 인종차별이 극에 달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흑인 인권운동가 ‘팀’과 ‘스티븐’이 투옥됐다가 직접 만든 나무열쇠로 404일 만에 탈출한 실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숨겨진 비밀통로를 찾아낸다든지, 숟가락으로 감옥 바닥을 판다든지, 사람을 매수한다든지 하는 방법이 아니라 열쇠를 만들어 정문으로 당당히 탈출한 죄수자라는 소재는 상당히 흥미롭다. 영화 역시 이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수감 초반부, 탈옥 계획을 세울 때 여러 가지 실패사례를 언급하며, 이 탈출 방법이 굉장히 흥미로운 접근법이라는 걸 관객들에게 확실히 주입시킨다.

스릴러물을 대하는 이 영화의 자세
이런 흥미로운 실화를 가져온 것은 좋았으나, 실화 모티프는 곧 양날의 검이 되고 만다. 탈출과정에서 스릴을 반감시키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실화라는 사실에 과하게 의존하여, 탈출의 각 단계를 관객에게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다. 그들이 처한 환경은 탈옥을 권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료들을 같은 층 독방에 수감하고, 방해하는 세력이나 문 앞을 지키는 간수조차 없다. 주인공이 열쇠를 만들어 한 밤 중에 탈출 연습을 하는 부분에서 의아함을 느낀 관객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감옥 감시가 저렇게 허술했던가?

실제 팀과 스티븐이 갇힌 감옥의 환경이 그러했다 하더라도, 영화는 탈출 스릴러인 이상 환경에 대한 개연성을 탄탄하게 만들었어야 했다. 이를 소홀히 한 탓에 관객들은 저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내 실화니깐, 실제로 저렇게 탈출했겠거니 스스로를 설득하고 극을 따라가고 만다. 과정에서의 개연성보다 실화니깐 믿고 따라오라는 식으로 관객을 이끌고 간 영화는, 관객이 고민할 수 있는 재미 요소를 스스로 잃고 말았다.

그러나 열쇠로 16개의 철문을 열고 나가는 장면에서는 적당한 긴장과 이완을 만들어가며 스릴러로서의 완급 조절은 상당히 잘해낸다. 열쇠를 만들고 문을 여는 장면은 동적이기보단 정적인 활동에 가깝다. 때문에 극의 긴장이 떨어질 수 있지만 그런 부분은 청각적 요소를 더하여 보완했다. 크게 들려오는 전축 소리라든지, 발자국 소리, 뚱뚱한 경찰의 숨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지는 식으로 충실히 관객들을 쥐락펴락 한다. 또한 창살 너머로 열쇠를 떨어트리거나, 숨어든 라커룸의 손잡이가 너무 짧아 그를 놓치는 등 소소한 이벤트를 넣어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놓친 것이 잡힐 듯 말 듯한, 누구나 한 번 쯤은 겪어봤을 그런 초조함을 집요하게 이용해낸다.

탈출극을 대하는 이 영화의 자세
탈출극이 가장 먼저 관객을 납득 시켜야 하는 부분은, 탈출의 동기이다. 사는 데 별 지장 없는 환경이라면, 적응의 동물인 인간이 굳이 커다란 장벽을 넘어 탈출하려고 할까? 그냥 그에 맞게 적응해 나갈 것이다. 똑똑한 관객 역시, 이 부분이 설명되지 않으면 극에 좀처럼 몰입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보통은 ‘가만히 있으면 내가 죽는’ 환경을 만들거나 ‘가만히 있으면 밖의 누군가가 죽는’ 환경을 만든다. 전자는 큐브, 이스케이프 룸, 쏘우 같은 극한의 환경 탈출극에서 많이 쓰이고, 후자는 어린 자식, 병든 부모를 생각하며 탈출하려고 하는 <7번 방의 선물> 같은 가족 드라마에서 많이 쓰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느 경우일까? 후자의 경우에 가깝다.

당시 남아공은 인종 차별을 법률적으로 공식 인정하는 정책인 ‘아파르트 헤이트’를 30여년간시행하고 있었다. 흑인을 비롯한 모든 유색 인종은 전용 통행구역과 거주 구역으로 격리되어 많은 수모를 겪었다. 감옥에는 이미 이전세대의 인권 운동가들이 수십 년간 가족얼굴도 보지 못한 채 독실에 갇혀있었다. 팀과 스티븐은 매일 흑인 청소부가 폭언과 폭행에 휘둘리는 것을 본다. 그들이 이대로 수십 년 감옥에서 썩는다면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감옥 밖 세상에는 아직 그들이 완결 짓지 못하고 온 일이 있다. 그들의 탈출 동기는 밖에서 죽어가는 흑인을 살리기 위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특이하지 않은가? 이렇게나 고결한 탈출 이유는 처음 봤다. 이 부분은 호불호가 조금 갈릴 것 같다. 인권을 위한 탈출기로서 그들의 몸부림을 더욱 감동적으로 느낄 사람이 있을까 하면 한편으론, 탈출 동기마저 실화에 의존해서 제대로 규명하지 않았다고 하며 그들의 동기를 작위적으로 느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두 세대를 대하는 이 영화의 자세
팀과 스티븐이 오기 전, 감옥에는 이미 이전 세대의 인권 운동가들이 수감돼 있었다. 주인공 일행은 감옥에서 침묵하고 있는 것이 곧 현 체제에 순응하는 것이라며 탈옥을 권하지만 그들은 탈출에 응하지 않는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으로 비춰지며 영화는 이를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주인공 일행이 발각 위기에 처한 순간 간수의 주의를 끈 건 감옥에 남아있던 이전 세대들이었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탈출은 남아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완성됐다.

이전세대의 대표는 ‘씨앗이 땅에서 썩어야 작물이 자라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인권 쟁취의 역사와 사회의 변화는 결코 한 세대만의 공이 아니라, 이전세대의 마중물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인공 일행이 무사히 탈출한 다음 날 아침, 뒤집어진 교도소 안에서 남아있는 자들은 환하게 웃어 보인다. 그들의 진심어린 미소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신구 세력의 대립을 갈등 요소로 쓰지 않은 건 좋은 선택이었다.

이 영화를 대할 우리의 자세
내용과 개연성을 중시하는 사람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은 작품일 수도 있다. 그러나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데에는 충실하게 집중한 영화기 때문에 순간순간 몰입하며 영화를 즐긴다면 영화는 더 없이 만족스러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여러 요소가 한 데 섞인 만큼 감동과 카타르시스가 함께 몰려올 것이다. 아무생각 없이 영화를 즐기고 싶을 때, 스릴러물이 보고 싶지만 잔인한 장면은 보기 싫을 때, 쾌감과 감동을 동시에 느끼고 싶을 때,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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