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에 종사한지 30년 정도 되어가니 동종업계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인간관계에 대해 말하려 하면 ‘라떼는 말이야’라는 꼰대의식이 이미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 배어 있고, 또한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속담처럼 아무런 객관적 증거 없이 순전히 주관적 판단으로 보험업계 사람들을 자랑하는 것일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지금은 코로나 19 때문에, 아니 비록 코로나 19가 아니더라도 회식 문화 자체가 많이 바뀌었거나 심지어는 없어졌기 때문에 건배사를 하는 모습을 찾아 보기 어렵다. 하지만 예전에는 술집에서 ‘∼를 위하여’라는 여러 명의 우렁찬 목소리를 듣는 것이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회의나 모임도 참 많았다. 회사 내 직원 간, 업계 관계자 간, 감독당국이나 언론사 같은 외부기관 등이 서로 얽혀 다양한 모임과 회식이 있었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이때 기억에 남는 것이 우리처럼 한 분야에만 종사해서 다른 업종의 기업문화는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들을 두루 만나본 사람들이 해주는 얘기, 특히 범 금융업계를 놓고 봤을 때 은행, 증권, 보험업계 사람들을 모두 만나본 감독당국이나 언론계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일 수도 있으나 ‘증권업계 사람들은 주식시장이 하루에 일희일비해서 그런지 관계 지속기간이 매우 짧다, 은행은 정기예금 금리가 1년 단위라서 그런지 중간 정도, 보험업계 사람들은 장기보험, 종신보험이 말해주듯 한번 알아놓으면 관계가 평생을 간다.’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요직에 있을 때 아는 체를 많이 하던 사람들이 한직으로 가니 연락이 없던데 보험에 있는 사람들은 계속 연락이 오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서두에서 밝혔지만 이는 아무 근거도 없는 몇몇 사람들의 극히 주관적인 판단이니 많은 반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러한 견해를 갖는 사람이 여러 명이 되고 집단화된다면 어느 정도 일반화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2004년경 각 손해보험사 기획부장들이 모여서 업계 문제들을 논의하는 모임이 있었다. 자동차보험 손해율 같은 업계 공통 현안이야 다 같이 해결하려 머리를 맞댔지만 회사별로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안건들도 많아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참석했던 사람들의 모임을 16년이 지난 지금도 하고 있다. 지금은 당시 재직했던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고 심지어 보험업계가 아닌 다른 업종에 근무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찌됐든 참 잘 모인다. 그리고 나오는 사람들도 본인들이 다른 모임은 몇 년 하다가 마는데 여기는 이상하게 오래가고 좀 편안한 기분이 든다고 얘기한다.

또 12년 전 홍보업무를 하면서 알게 된 기자나 데스크, 업계 홍보 관계자들도 상당수 지금까지도 만나고 있다. 기획부서 관계자 모임이 좀 점잖은 성격이라면 이쪽 분야의 모임은 좀 더 끈끈하고 의리가 있다고나 할까? 특히 업계 홍보관계자 모임은 지금은 다들 OB이므로 특별한 이슈가 없는 반면 과거에 같이 했던 경험과 공감대는 여전히 깊게 남아 있기 때문에 늘 봐도 어제 본 듯 반갑다.

한편 언론사와는 그 관계성으로 볼 때 흔히들 말하는 갑과 을이라는 사회적 위치 때문에 쌍방이 아닌 일방의 관계가 되기 쉬운데 보험업계는 유독 이런 틀을 깨는 많은 사례를 보았다. 홍보관계자가 기자나 데스크를 챙기는 거 말고 언론계에서 홍보관계자들을 챙겨주는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 일들은 장기판에서 ‘포가 포는 못 먹는다’ 하듯이 어느 언론사에서 특정 회사의 문제를 다루는 기사는 내보내더라도 홍보관계자를 공격하는 일은 없다라는 그런 불문율 같은 수준의 이야기는 아니다. 나도 개인적으로 좀 특이한 경험을 했는데 예전에 몸담았던 회사를 나와 잠시 쉬고 있을 때 모 언론사 기자가 전화를 하더니 그간 고생했고 머리도 복잡할테니 잠시 바람이나 쐬러 다녀오라고 여행을 권유하며 아무 댓가도 없이 비용까지 보태주었다. 그렇게 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라서 사실 좀 감동을 받았는데 아직까지도 참 고마운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일들로 인해 보험인들의 인간관계가 다른 업계에 비해 더 좋고 오래간다는 속설이 맞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실 일반인들은 그런 속설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나와 적어도 내 주변의 몇몇 보험인들은 그렇게 믿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것이다. 몇 개월 만에 불쑥 전화해서 글을 하나 써 줄 수 있느냐 하는 부탁을 하고, 그걸 또 이렇게 풀어내는 것은 원고청탁 한 사람이 위에 언급한 그 기자라는 게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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