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여울길의 마스코트 고양이 한마리가 세상 평온한 자세로 잠을 청하고 있다. 고양이를 기점으로 왼편엔 집들이, 오른쪽엔 바다가 펼쳐져 있다.
흰여울길의 마스코트 고양이 한마리가 세상 평온한 자세로 잠을 청하고 있다. 고양이를 기점으로 왼편엔 집들이, 오른쪽엔 바다가 펼쳐져 있다.

<대한데일리=오은희 시민기자> 코로나로 해외 여행길이 꽉 막힌 요즘. 여행자들은 국내 여행지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남들과는 다르게 특별한 여행을 하고 싶은 여행자라면 ‘부산 골목길 여행’을 추천한다. 산토리니, 마추픽추, 쉐프샤우엔 등 부산에서도 마치 해외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을 물씬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의 산토리니 ‘영도 흰 여울길’

부산의 산토리니(Santorini)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바로 이름도 고운 ‘흰 여울길’이다. 영도에 위치한 흰 여울길은 부산의 많은 골목길 중에서도 부산의 매력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1m(미터) 남짓한 좁다란 길을 사이에 두고서, 한쪽 편엔 자그마한 집들이 가파른 절벽을 타고 아슬아슬한 탑을 쌓고 있고, 다른 편엔 푸른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양쪽의 이질적인 풍경을 마주한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지른다.

하지만 여기엔 가슴 아픈 피난의 역사가 담겨있다. 부산의 많은 동네가 그렇듯 이곳 역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부산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만들어낸 판자촌이다. 그들은 살 곳을 찾아 산이든 바다든 가릴새 없이 집을 짓게 된 것이다.

쫓기듯 바다와 절벽 사이에 삶의 터전을 마련해야 했을 당시 피난민들의 노고가 느껴져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골목길 곳곳에 카페, 잡화점들이 들어섰으나, 여전히 그곳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주민들이 있기 때문에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은 금물이다.

산비탈 위의 형형색색의 집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산비탈 위의 형형색색의 집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집으로 만든 무지개 장관 ‘감천문화마을’

모로코(Morocco)에 파란색 마을 쉐프샤우엔(Chefchaouen), 페루(Peru)에 고산마을 마추픽추(Machu Picchu)가 있다면, 부산에는 이 둘을 모두 담은 ‘감천문화마을’이 있다.

하늘에 닿을 듯 말듯 하늘과 가까운 데 위치한 이곳은 알록달록 예쁜 빛깔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다.

감천문화마을 역시 6.25 전쟁 피난민이 정착하면서 생겨난 마을 중 하나다. 갈 곳이 없는 그들은 가파른 절벽에 옹기종기 모여 계단식으로 집을 짓고 살았다.

이렇게 슬픈 역사를 간직한 마을은 지역 예술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모여 시작한 ‘마을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관광 명소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지난해에는 무려 308만명의 관광객이 이 마을을 방문했다고 한다.

감천문화마을의 아름다움은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바라볼 때 진가를 발휘한다. 골목 속 아기자기한 집들도 예쁘지만, 골목길을 돌아 나와 공영주차장 메인도로 한 블럭 아래로 내려가면 마을 전체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그야말로 형형 색깔의 집들이 조화를 이룬 무지갯빛 장관이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국내 유일의 헌책 골목이다. 고서나 양서 등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국내 유일의 헌책 골목이다. 고서나 양서 등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다.

시간여행을 원하다면 ‘보수동 책방골목’

보수동 책방골목은 전국 유일의 헌책 골목으로 가장 손쉽게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보수동책방골목도 6.25 전쟁과 역사를 같이 한다. 1950년 6.25전쟁 이후 부산이 임시수도가 됐을 때 이북에서 온 피난민이 보수동 사거리 입구 골목에서 노점을 펼치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 잡지와 고물상에서 수집한 각종 헌책으로 노점을 시작한 게 지금 보수동 책방골목이 됐다.

이후 60~70년대에 접어들며 골목에 책방이 늘어나게 됐고, 당시 생활이 어려운 피난민과 지식인들이 책을 내다 팔면서 책을 사고파는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됐다.

이곳에서는 헌책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타디스(영국드라마 닥터후에 나오는 타임머신 이름)’를 타지 않아도 자유롭게 시간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에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헌책의 가장 제일 앞을 펼쳐보는 거다. 책장 제일 앞을 뒤지다 보면 간간이 원래 책 주인이 남긴 짧은 메시지들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남긴 메시지부터 30~40년 전 케케묵은 글들까지 다양하다. 특히 현재 30대인 필자로선 당시 20~30대 청년들이 남긴 메시지들을 발견하면 너무 반갑다. 30년 전 당시 지금의 내 나이를 가진 이들이 고민했던 것들이 지금 나의 고민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걸 느낄 때면 괜한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때로는 이 메시지들이 책보다 더 큰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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