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데일리=염희선 기자> 은행권의 고령화 대응 신탁 상품 출시가 이어지고 있다. 치매나 상속, 증여 등 노년층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금융상품을 통해 지원하기 위해서다. 다만 신탁업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제도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지난 2일 KB위대한유산 신탁을 출시했다.

이 상품은 가치 변동이 크지 않은 금 실물을 상속·증여할 수 있는 유언대용신탁이다. 안전자산인 금을 매월 적립해 노후를 대비하거나, 사후나 생전에 자녀에게 상속·증여할 수도 있다.

상속·증여 시에는 금 실물과 현금 지급 중 선택할 수 있다. 상속은 상속 당시 운용자산 그대로 승계도 가능하다. 금 실물을 선택해 증여할 때에는 한국조폐공사에서 인증하는 순도 99.999% 이상의 골드바를 제공한다. 100그램 단위로 인출도 가능하다. 부가서비스로는 고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레터서비스’, 상속증여 관련 ‘전문가 상담서비스’가 제공된다.

KEB하나은행은 자신이 죽었을 때 가족이 부담 없이 장례나 세금, 채무상환을 처리할 수 있는 ‘KEB하나 가족배려신탁’을 판매 중이다.

이 상품은 기존 고액자산가들이 가입했던 맞춤형 상속신탁과 달리 보급형으로 출시해 고객이 부담 없이 사후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고객은 본인의 사후 장례비용을 포함한 금전재산을 은행에 맡기고, 귀속 권리자를 지정하면, 은행은 본인 사망 시 별도의 유산분할 협의를 거치지 않고 빠르게 귀속 권리자에게 신탁된 금전재산을 지급할 수 있다. 따라서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사후 처리비용 분담에 대한 자녀 갈등 감소도 기대할 수 있다. 이외에 상조서비스, 유산정리서비스, 상속컨설팅서비스를 부가서비스로 제공한다.

치매 대비 신탁도 은행권의 고령화 대응 상품군이다.

국민은행이 내놓은 KB 성년후견제도 지원신탁은 고객(위탁자)이 치매 발병으로 후견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 국민은행과 신탁계약을 체결하고 금전을 맡기는 상품이다. 치매 발병을 이유로 후견이 시작되면 후견인이 치매치료와 요양자금을 은행에서 지급받아 고객(위탁자)을 위해 사용하게 된다.

하나은행의 치매안심신탁은 치매에 대비할 수 있는 자산관리 플랜설계와 상속 지원을 돕는다. 치매 판정을 받은 후 소요되는 병원비, 간병비, 생활비 등 안전한 지급관리를 통해 치매 발병 초기부터 중증에 이르기까지 치매 단계별로 종합 맞춤형 자산관리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처럼 은행권의 신탁 출시가 이어지고 고객 관심도 늘고 있지만 활성화를 위한 장벽이 만만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고객이 유교문화 특성상 재산을 다른 사람이나 기관에 맡기거나, 자신의 재산을 투명하게 드러내는데 거부감이 높다는 점이다.

현재 가족 단위 사회구조에서 자신의 재산을 남에게 맡기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고, 변호사 등 전문가에게 유언신탁을 맡기는 것도 익숙치 않다는 것이다. 최근 관심이 늘고 있는 부동산신탁도 고객 자신이 보유한 소유권을 (기관으로)이전한다는데 있어 부정적인 인식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따라서 신탁을 통해 자산이 드러나더라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세제 혜택, 상속 절차 간소화 등이 제도에서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탁 자산운용의 다양성을 더하기 위해 생명보험을 신탁자산으로 편입시켜 보험사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국내에서는 사망 시 보험금을 유언대용신탁에 넣고 성년이 될 때까지는 생활비를 주고, 일정 시점에 목돈을 주는 일명 보험금신탁이 법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러 선진국들에서는 보험금을 신탁자산으로 허용해 신탁을 통한 보험금 관리를 허용하고 있다.

은행 한 관계자는 “종합자산관리 기능을 신탁업에 더하기 위해 법·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돼야 한다”며 “교육, 대출, 은퇴설계, 유산상속 등 생애주기별 신탁 상품을 체계적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하고, 퇴직연금과 관련한 신탁도 적극 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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