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데일리=정민혁 기자> 우리나라 지폐는 크기가 달러화나 유로화보다 크다고 한다. 실제 크기뿐 아니라 단위도 크다. 국내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화폐의 단위가 높은 것에 대한 불편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일상생활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요즘 카페나 레스토랑에 가보면 5000원을 5로, 2만5000원을 2.5로 표시하는 식이다. 

한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은행권 및 주화 액면의 가치를 바꾸지 않고, 같은 비율로 낮춰 표현하고 화폐의 호칭을 새로운 통화 단위로 바꾸는 것을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화폐단위 변경)이라고 한다. 

보통 리디노미네이션은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지속돼 화폐로 표시하는 금액이 점차 증가하면서 발생하는 계산, 지급, 장부기재상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실시한다.

1960년대 프랑스는 100대1의 리디노미네이션을 실행했다. 달러(dollar)대 프랑(franc)의 비율을 한 자리수로 조정해 자국 통화의 가치를 높인 것이다. 개발도상국가의 경우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화폐가치의 하락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한다. 브라질은 국민들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심리를 억제하는 수단으로 지금까지 총 여섯 번에 걸친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했다.

인도는 2016년 지하경제 양성화로 화폐개혁을 실시했다. 인도는 현금 거래비중이 90%가 넘는데 신권으로 교환을 해야 화폐가 사용 가능했지만 은행에서 신권 교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일시적 혼란이 확대됐다.

우리나라는 1953년과 1962년 두 차례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1953년은 전쟁으로 생산활동이 크게 위축된 상태에서 거액의 군사비 지출 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해소를 위해 100대1로 비율을 조정한 바 있다. 1962년에는 정부가 숨은 돈을 양성화해 경제개발계획에 필요한 산업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10대1의 비율로 화폐 개혁을 시행했다.  

지난 3월 한국은행 업무보고에서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는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 발언 후 실현 가능성과 영향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지난 5월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관련 정책토론회를 공개적으로 열면서 관심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3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가 원화 리디노미네이션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히면서 상황은 일단락된 상태다. 

화폐단위 변경의 효과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이 엇갈린다. 

부정적 효과에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꼽힌다. 예를 들어 950원의 경우 0.95로 변경되는데, 일종의 반올림 효과로 쉽게 1.00이 돼 물가 상승을 불러 오게 된다.

부동산 시장 혼란도 문제다. 화폐단위를 변경하면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실물자산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 국민 자산이 부동산에 쏠린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시장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화폐단위 변경에 따른 긍정적 효과는 새로운 교체수요다. ATM기기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다양한 곳에서 교체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일종의 경기부양 효과인 셈이다. 지하경제 양성화도 장점이다. 신권으로 교환하는 과정에서 추가 세수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장의 리디노미네이션은 모두를 불행에 빠지는 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부 경제 상승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을 야기하고 경제정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등 부작용이 심하다는 것이다. 

다만 충분한 논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성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공통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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