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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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에게 제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너무 서운해요. 저는 그 친구를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데, 그 애한테는 저 말고도 다른 소중한 사람들이 많은 거잖아요. 은근히 초라해지는 기분이에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이젠 제가 상대에게 1순위가 아닐 바에는 처음부터 깊이 있게 친해지고 싶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면 상처받는 건 결국 저니까요. 저 혼자 아쉬워하고 서운해 하게 되겠죠.

어쩌면 드물지 않은 이야기다. 친구를 애인 또는 가족으로 바꾸면 더욱 익숙한 스토리가 완성된다. 나는 내 연인이 가장 소중한데 연인은 그렇지 않은 듯이 행동해서 서운하다거나, 내 연락에 답장이 늦는 걸 보니 이 사람은 날 중요시 여기지 않는 것 같다는 등 다양한 사례로 변주가 가능하다.

서운하기만 하면 다행이지, 급기야 화까지 난다. ‘나를 무시하는 건가’하는 생각에 예민해지고, 곧이어 ‘나를 존중한다면 이럴 리 없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분명해’라는 확신이 든다. 감정이 격해지면 ‘손절’이라는 급격한 전개로 이어지기도 한다.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나도 모두를 우선순위에 두는 건 아니잖아’라고 애써 상대를 이해해보려 하지만 상심한 마음은 회복되지 않는다.

위와 같은 서운함과 분노가 익숙하게 느껴진다면,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인간관계의 우선순위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면 당신은 언젠가 실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생각들은 관계에 집착하고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게 하며, 당신의 매력을 떨어뜨리고 상대방을 지치게 해 오히려 사람들과 멀어지게 만든다.

서로를 단짝으로 꼽는 소울메이트만 있으면 만사형통할 것 같지만, 진화학적인 관점에서도 다양한 친밀도의 관계를 가진 사람이 생존과 적응에 훨씬 유리하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의 파도를 잘 타기 위해서는 배우자 혹은 절친한 친구처럼 나와 아주 가까운 소수의 사람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가벼운 관계들이 필요하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 직장을 소개해주고,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근처를 지나가던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에게서 극적인 도움을 받는다. 가볍게 알고 지내던 지인이 나와 평생 함께할 반려자를 소개해준다. 우리는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산다. 친밀도의 층(layer)이 다양한 사람들은 하나의 관계에서 위기를 겪더라도 나머지 관계에서의 지지를 통해 어려움을 보다 잘 넘길 수 있다.

가장 친밀한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영광의 금메달을 받고 싶은가? 메달 순위에 들지 못하면 버림이라도 받은 듯이 괴로운 느낌이 드는가? 인간관계는 올림픽 경기가 아니다. 누구도 개최하지 않았고, 경쟁하지 않는 다툼에서 이기기 위해 아까운 에너지를 소비하지 말자.

인간관계는 올림픽보다는 다함께 어우러지는 강강술래나 포크댄스에 가깝다. 지금은 이 사람과 같이 춤을 추고, 이어서 또 다른 이와 함께 춤을 출 것이다. 중요한 건 지금 나와 함께 춤을 추고 있는 사람이다. 파트너가 바뀌었음에도, 아까 나와 춤을 췄던 사람이 지금은 어디서 누구와 춤을 추고 있는지 신경 쓰고 불안해 하다보면 어떻게 될까? 스텝과 동작은 꼬이고,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의 매력과 진가를 발견하기도 전에 떠나보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상대가 느끼는 당신에 대한 인상도 긍정적일 수 없다.

여러 심리학 연구에서도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경험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욱 행복감을 잘 느낀다고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 특정인물 혹은 우선순위에 몰두하는 대신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에게 진심을 다해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보자. 나 자신의 감정과 욕구가 무엇인지 찬찬히 들여다보자. 당신을 외롭게 한 것은 상대방의 무심한 태도가 아니라 당신 내면의 목소리였는지도 모른다. 내 인생에는 이 사람 말고 무엇이 있을까? 내가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이 사람의 애정일까? 이 사람이 나의 자존감을 결정할 만큼 대단한 사람인가?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당신과 마음을 나눌 사람들이 보일 것이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당신이 눈치채기 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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