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데일리=이봄 기자> 국제유가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서는 국제유가 마이너스(-)를 인식하지 못해 원유(WTI) 선물 거래가 정지돼 청산주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37.63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 17일 종가 18.27달러보다 305% 폭락한 수치다. 국제 유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은 사상 처음이다.

WTI 선물 5월물이 폭락한 이유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급감한 석유 수요 불확실성이 ‘공급과잉’ 공포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원유시장의 선물 만기 이벤트까지 겹친 탓이다. 오늘(21일) 5월물 WTI 만기일이 돌아온 가운데 선물 투자자들은 값이 떨어진 선물 원유를 실제 인수하기보다는 6월물로 갈아타는 '롤오버'를 선택하면서 원유 물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롤오버를 포기한 대량 매도세까지 겹치면서 WTI 선물 5월물 가격이 폭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상 첫 마이너스 유가 시대에 돌입하면서 국내 증권사 HTS에서는 WTI 연계 상장지수증권(ETN)과 관련한 전산 오류가 발생했다. 증권사 HTS가 국제 유가 마이너스 가격을 인식하지 못해 투자자들의 청산 주문이 제 때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키움증권 HTS는 전일 국제유가 마이너스(-)를 인식하지 못해 매매가 멈췄고 투자자들의 청산 주문을 받지 못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공지 없이 반대매매(강제청산)를 당하기도 했다. 통상 선물시장의 예탁평가액이 유지증거금을 밑돌경우 증권사는 투자자에게 증거금 추가 유치(마진콜)를 요청한다. 마진콜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반대매매에 나서는 식이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HTS 먹통에 따라 주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임의 반대매매가 이뤄졌다.

키움증권 뿐만 아니라 이베스트투자증권 등 해외선물을 위탁매매하는 다른 증권사도 비슷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WTI 청산에 실패한 일부 투자자들은 증권사를 대상으로 한 소송도 고려하고 있다.

한 원유 선물 투자자는 “증권사 HTS에서 마이너스 유가를 생각하지 못하고 시스템을 마련해놓지 않은 탓에 주문을 넣었는데도 거부당했다”며 “잔고가 1000만원이었는데 손실이 수익으로 잘못 처리돼 자동청산도 안 돼 빚이 2200만원이 생겼다. 일부 증권사 HTS에서만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증권사에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질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HTS에서 국제유가 마이너스 가격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건 시스템상 문제가 있었다는 것으로 오류를 낸 증권사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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