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점점 더 달라지고 멀어지는 것’이 양극화다. 중간이 사라지는 현상이다.

중산층은 줄어들고 부자와 빈자의 간극이 더 벌어지는 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우리의 공동체가 위기로 치닫고 있다. 명문대학 합격률에 있어서도 경제력의 영향이 확대되는 교육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되고 있음에도 의료 혜택의 양극화는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금융도 예외가 아니다. 금리 인상기인 지금의 금융 환경은 양극화의 골을 더 깊게 한다. 소득이 높고 신용이 좋은 사람들은 싼 이자에 돈을 더 빌릴 수 있지만 신용점수가 낮은 사람들은 은행 대출 문턱을 넘지 못하고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돈이 많은 사람들은 높은 예금 금리의 혜택을 받고 재산이 더욱 늘어나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의 지갑은 오른 대출이자로 인해 점점 더 얇아지고 있다. 바야흐로 금융 양극화가 극에 달하는 형국이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상도 우려되지만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 더 걱정이다. 계층 이동 사다리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큰일이다. 하루속히 대책이 필요하다. 각자가 속해 있는 영역에서 지혜를 모을 때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라고 불리는 권력자들은 정파를 떠나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정치가는 정책과 법률을, 전문가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피라미드형 계층구조보다 항아리형이 보다 건강한 사회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금융 양극화의 원인은 자명하다. 스타트 라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경제력이 높으면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고 명문대학과 대기업에 다닐 수 있어 더 높은 소득을 올릴 확률이 높을 테니 이른바 공정 경쟁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소득은 불완전할망정 사다리라도 있으니 따라잡을 수 있다고 치더라도 재산은 정말이지 답이 없다. 평생을 모아도 서울에 있는 아파트 한 채 장만하기가 불가능해진 세상에서 부모의 재산을 대물림 한 청년들과 흙수저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 않겠는가. 이처럼 소득과 재산의 차이가 금융 양극화의 원인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다.

한편, 금융 양극화의 원인을 금융 문맹을 방치하는 금융교육의 부재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글자를 배우고 문장을 읽으면서 문맹에서 벗어나듯 금융의 개념을 배우고 금융 현상을 이해해야 금융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금융에 대한 보편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우리나라의 금융 문맹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분석한다.

몇 년 전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다드앤푸어스가 ‘세계 금융 이해력 조사’에서 한국 성인 중 33% 만이 금융 이해력을 갖추고 있다고 발표한 것이 이러한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이는 금융 선진국인 미국(57%), 영국(67%)은 물론 여러 개도국보다도 낮은 수치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실시한 ‘전 국민 금융 이해력 조사’에서도 평균 금융 이해력은 66.5점 수준에 그쳤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금융교육국제네트워크(INFE)가 제시한 최소목표 점수(66.7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나 수치보다 더 큰 문제는 금융 이해도가 연령과 계층에 따라 양극화돼 있다는 사실이다. 젊은 층인 20대와 노년층인 60~70대가 평균을 밑돌았으며,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고졸 미만 학력과 대졸자 간의 격차가 너무 크게 나타났다. 재산과 소득의 격차가 벌어지는 경제적 양극화가 금융 양극화의 원인이라면 연령과 계층에 따른 금융 이해력의 양극화는 금융 양극화 현상을 설명하는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금융 이해력의 양극화는 필연적으로 금융 문맹을 확대하고 금융 문맹은 금융 양극화를 심화한다. 하기야 금융 문맹이 금융 양극화의 원인이면 어떻고 결과면 또 어떻겠는가. 그 둘의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은 진실이지 않은가 말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 사회도 금융 문맹과 금융 양극화로 인해 생존이 문제가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보편적인 금융 공교육 체제를 마련하든 민간 중심의 금융교육 인프라를 확대하든 이제는 금융교육을 통한 금융 문맹의 퇴치와 금융 양극화의 해소에 나설 때가 됐다. 금융 양극화는 소득 양극화의 다른 표현일 뿐이고 공동체 유지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금융 양극화를 해소하고 한국 경제가 선진적 경제구조로 도약하기 위해서도 금융교육 확대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소득과 재산이 없는데 금융지식만 익혔다고 양극화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자 부모를 만난 학생들만 일찌감치 주식투자에 나서거나 금융 사교육을 받아 더 부자가 되는 일만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 점이 바로 소득 양극화의 시작이며, 이를 방치하면 양극화는 더욱 더 고착될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 양극화가 경제적 양극화의 결정적 원인도 아니고 금융 양극화를 해소한다고 금방 경제적 양극화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겠지만 금융 양극화를 줄임으로써 경제적 간극이 줄어들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길을 찾아야 한다.

그 시작이 금융 교육이고 그 목표는 금융 문맹을 없애는 일이다. 그러나 원인이 어디에 있든 분명한 사실은 양극화로 인해 공동체가 망가지면 종국에는 나라까지 결딴난다는 점이다. 양극화의 폭우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 뿐 아니라 힘 있고 돈 많은 사람들의 머리로도 쏟아지는 법이다. 지식을 가졌든 권력을 갖고 있든 돈이 넘쳐나든 모든 기득권자들이 대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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