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전, 대학에서 투자론 강의를 들을 때의 얘기다. 교수님은 위험과 수익의 관계와 시장민감도를 나타내는 베타계수라는 용어를 설명하면서 ‘미국의 중산층 가정에서는 밥상머리에서 베타계수를 얘기할 정도로 아이들에 대한 금융교육이 보편적’이라는 말을 하셨다. 비슷한 얘기가 유태인의 금융교육의 예로서 많이 등장하는 걸 보니 예나 지금이나 돈 많이 번 사람들의 자녀 교육법에 금융교육이 자리 잡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영혼을 끌어 모아 투자한다는 ‘영끌족’이 최근 우리 경제와 금융 뉴스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자고 나면 오르니 미래가 불안한 청년 세대가 코인과 주식 그리고 집 구입 대열에 합류한 것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세상에 오르기만 하는 투자는 애초에 없는 법이라 떨어진 자산을 팔지도 못하고 이자만 내야 한다면 이 젊은 세대의 고통은 누가 해결해 줄 수 있겠는가. 그들이 앞으로 떠안아야 할 팍팍한 삶이 걱정일 따름이다.

이렇듯 청년들이 갚을 수 없는 대출을 받아 묻지마 투자로 일확천금을 꿈꾸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일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은퇴 세대가 주식투자에 실패해 노후자금을 잃고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사례 또한 빈번하다. 이러한 현상은 금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며, 이는 금융교육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배경이다.

금융교육이 활성화되면 금융사고 또한 줄어든다는 것이 정설이다. 예컨대 학교나 직장에서 금융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진다면 각종 금융사고로 인한 손실이나 피해가 적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저소득층이나 사회 초년생들일수록 경제상황 변화에 취약하다는 점에서 이들을 위한 맞춤형 금융교육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금융 이해력 격차를 줄이려면 학교 교육체제부터 바꿔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다. 입시 위주의 교과 과목 편성으로 인해 경제 과목이 학생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상황에서 학교 현장에서 경제나 금융을 전문적으로 가르칠 교사도 거의 없는 실정이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 학교 금융교육을 얘기할 수 없다는 얘기인 것이다.

교육과정 개정을 통한 학교 금융교육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금융을 포함한 경제를 ‘일반사회’ 속 하나의 분야로 보는 기존 생각을 깨고 이를 핵심 교육 과정에 포함해야 하며, 교사 대상 연수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교육진흥법’ 제정안을 지난 3월 대표 발의하면서, ‘초중고 학생들이 금융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고 올바른 금융활동에 대한 역량을 갖춰 향후 경제활동 과정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기 위해서’라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제정안을 살펴보면, 먼저 금융교육을 ‘금융에 대한 지식을 이해하고 건전한 금융역량을 향상시키며, 금융사고와 금융사기 등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교육기관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교육’으로 정의했다. 학생들이 ‘금융에 대한 지식과 기능 그리고 태도와 가치관 등을 갖추도록 하는 교육’이다. 또한 교육부를 금융교육 컨트롤타워로 하며, 산하에 금융교육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다. 교육부장관에게 금융교육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금융교육종합계획을 수립할 의무를 부여하고, 교육감에게는 연도별 금융교육시행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도록 했다.

또한 금융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연구기관 지정, 우수학교 지정, 교원연수, 금융교육센터 설치, 국제협력에 관한 사항도 규정했다. 금융교육위원회는 금융교육 관련 종합 계획을 수립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아울러 교육부 장관이 금융교육의 전문성과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3년마다 금융 교육 종합 계획을 수립, 시행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입법 발의된 지 5개월이 되었지만 논의의 진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전언에 의하면, 대체적으로 정부의 입장은 입법에 부정적인 분위기라고 한다. 교육부와 기획재정부 그리고 국가교육위원회 모두 금융교육진흥법 제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융교육진흥법과 유사한 법률인 ‘경제교육지원법’과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이미 금융교육을 경제교육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데 중복 법률을 제정할 실익이 없으며, 정책 혼선만 야기할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반대의 논리를 세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입법이 추진된 당시와 비교해 경제적 상황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도 입법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금융사기는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고 있고 ‘영끌’과 ‘빚투’ 행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금리가 올라도 빚은 줄지 않고 제2, 제3금융권을 찾는 저신용자는 오히려 늘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입법 논의에 불이 붙을 만도 한데 국회는 요지부동이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학교 금융교육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국가 차원에서 학교 금육교육을 강화하고 체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는 오직 법률로만 가능하다. 다만 그것이 금융교육 진흥법 제정이든 기존 경제교육지원법 개정이든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취지에 동의하고 상황이 급박하다면 당장이라도 입법에 나서야 한다. 한가하게 법률체계와 중복 등을 트집잡을 시간이 없다는 얘기다.

다양한 민간 금융교육기관의 협력과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정부의 전향적인 의사결정과 정책의 수립을 촉구한다. 서울시교육청이 초등학생 대상으로 추진중인 ‘체험으로 만들어가는 경제·금융교육’의 세부 사업으로 금융산업공익재단이나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 등과의 연계 체험형 프로그램 추진을 명시한 것은 금융교육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방향을 정하는 데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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