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데일리=임성민 기자> 안정적인 자산 운용을 위해 보수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던 보험산업이 최근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사모펀드 사태로 소비자 보호에 대한 중요성이 화두가 되면서 각종 규제가 산업을 옭아매고, 코로나19발 비대면이 일상에 스며들며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여기에 GA가 금융당국의 제도권 안에 들어오는 근거가 속속 마련되면서 보험업계는 한차례 성장통을 겪고 있다. <편집자 주>

◇ 고용보험 비용 부담에 자회사 신설 잇따라

오는 7월부터 보험설계사들의 고용보험 가입이 의무화된다. 고용보험은 근로자가 실직한 경우 생활 안정을 위해 일정기간 급여를 지급하는 실업급여 사업과 함께 구직자에 대한 직업능력개발‧향상 및 적극적인 취업 알선을 통한 재취업의 촉진과 실업 예방을 위해 고용안정사업 및 직업능력개발사업 등의 실시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보험 중 하나다.

설계사는 그동안 특수고용직근로자(특고직), 위촉직으로 분류돼 4대보험 적용이 불가능했다. 위촉직은 다른 사람에게 임명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든 직책이란 뜻인데, 설계사는 보험사 소속으로 소속 회사의 상품을 판매하지만 정규 직원은 아니었다. 쉽게 해촉(해고)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직업인 셈이다.

특히 실적에 따라 매달 급여가 달라지는 설계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고용보험 적용이 안 돼, 해촉 이후 일반적인 직군과 달리 실업급여를 받지 못해 사회적 약자로 분리됐다.

정부는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취지로 이들의 고용보험 적용을 도입한다. 다만 노무제공 계약에 따른 월 급여가 80만원 미만일 경우에는 고용보험 적용에서 제외된다. 고용보험료율은 설계사 보수의 1.4%로, 보험사와 설계사가 반씩 부담한다.

얼핏 보면 1.4%의 비중은 굉장히 작아 보인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 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선 고용보험을 적용받는 보험설계사 수만 봐도 지난해 43만2639명이다. 그중 보험사 소속인 전속설계사는 19만9877명, 법인보험대리점(GA) 설계사 수는 23만2762명이다. 급여 수준을 제외하고 본 43만명의 설계사에 대해 보험사 및 GA가 별도로 준비해야 하는 돈이 0.7%씩 투입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게 문제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전국민 고용보험에 따른 보험산업 영향’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체 보험설계사(41만3895명)를 현행 고용보험료율인 1.6%로 계산할 시 893억원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1.4%로 환산해도 781억원의 비용을 보험사가 추가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업권별로는 생명보험사 255억원, 손해보험사 215억원, GA가 311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상황에 업계에서는 고용보험 적용 시 대규모 구조조정이 단행될 수 있다고 본다. 고정지출 비용이 크게 증가하면서 현재 수준의 설계사 수를 유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보험사들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의 사회 안전망 사각지대 해소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자회사형 GA를 설립해 설계사를 이동시키는 방법이다.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곳은 한화생명과 미래에셋생명, 신한생명과 현대해상이다.

한화생명은 지난 4월 자회사형 GA ‘한화금융서비스’를 출범했다. 물적 분할을 통해 전속설계사 약 2만명을 이동시키면서 단숨에 GA업계 1위로 올라섰다. 총 자본금은 6500억원, 임직원은 1300명으로 구성됐다.

미래에셋생명은 올해 3월 자회사형 GA ‘미래에셋금융서비스’를 출범했다. 대표이사는 전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였던 하만덕 부회장이 맡았다. 미래에셋금융서비스의 자본금은 900억원 수준이고, 설계사 규모도 3500명에 달한다.

신한생명은 지난해 8월 ‘신한금융플러스’를 출범한 이후 대형 GA 리더스금융판매의 일부 사업부를 인수하는 영업권 양수도계약을 체결했다. 한화생명, 미래에셋생명처럼 자체 설계사 인력을 이동시키는 방식보다 외부 조직 흡수로 규모를 키운 것이다.

현대해상도 지난달 자회사형 GA ‘마이금융파트너’가 출범하면서 영업을 개시했다. 다만 보험사들이 영업조직을 대형화해 출범하는 방식과 다르게 현대해상은 정예화된 소규모 조직을 운영하며 내실을 다지는 방식을 선택하며 5명 미만으로 출범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보험사들의 움직임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고용보험료 부담은 여전하지만, 자회사에서 설계사 위‧해촉 문제를 떠맡게 되면서 책임 문제를 회피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주요 선진국에서는 제판분리가 활성화되고 있고, 판매조직의 전문성이 대두되는 만큼 국내 보험산업의 기조도 따라가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보험사들이 고용보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제판분리에 힘을 싣는다는 지적도 있다”고 말했다.

◇ 포화된 시장, 제판분리는 ‘경쟁력’

보험업계 제판분리 기조는 포화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보험연구원의 2020년 보험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보험 가입률은 99.1%로 대부분의 국민은 보험 1개 이상 가입했다. 이는 새로운 보험상품이 나와도 소비자의 웬만한 가입 니즈가 없으면 신규 매출을 창출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특히 종신보험, 변액보험 등 주력 상품의 구조가 어려운 생보사들이 제판분리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이유다. 상대적으로 구조가 단순해 상품 판매가 쉬운 손해보험사 상품을 취급하면서 수수료도 챙길 수 있어서다.

생보사의 경우 2023년 도입되는 새 회계기준 및 K-ICS(신지급여력제도)에 따른 재무건전성 민감도가 높아, 그만큼 자본을 충당해야 한다. 하지만 저축성보험은 대부분 부채로 인식되며, 주력 상품인 종신보험과 변액보험은 판매가 힘들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달러보험도 금융당국의 환헤지 위험 감수 압박에 속속히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는 모양새다.

보험사의 제판분리는 손쉽게 경쟁사의 영업전략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보험사들은 신상품 출시 및 주력 상품 소개를 영업조직에 가장 먼저 전달하고 그에 맞는 교육을 진행한다. 특히 GA는 조직 규모가 크고, 경쟁사 상품도 취급하는 만큼 설계사들의 이해력을 제고하기 위해 보험사들이 특별 관리하는 대상이다.

즉, 보험사들이 자사 상품 판매에 대한 매출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에 타사 상품 판매를 통한 수수료와 영업전략 등 1석 2조의 효과가 있는 셈이다.

다만 제판분리 과정에서 진통도 잇따랐다. 자회사로 임직원 및 설계사가 이동하면서 구조조정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화생명의 경우 임직원의 이동 조치로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지만, 사측의 발 빠른 대처로 4일 만에 중단된 바 있다. 이때 사측은 파업에 돌입한 노조의 요구조건을 대부분 수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래에셋생명 노조도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중지’ 판정으로 쟁의권을 확보한 뒤 사측과 협상 내용을 거쳐 파업 여부를 논의하기도 했다. 현 직장을 퇴사하고 자회사로 옮겨가는 구조라 직원들의 거부감이 컸다는 게 노조 측의 당시 설명이다.

보험사들이 잇따라 GA를 설립하면서 GA가 금융당국의 제도권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GA는 그동안 금융기관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판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완전판매, 내부통제, 내부 비리 등의 사안으로만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하지만 대형 보험사들이 GA를 만들면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져 금융당국도 개입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최근 ‘감독분담금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 GA도 감독분담금을 납부토록 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회사형 GA를 출범해 제판분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산업 경쟁력을 키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며 “보험사를 모회사로 둔 대형 GA가 속속 출범하면서 GA에 대한 금융당국의 감독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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